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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을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신 에페르샤님과 많은 바이에른 부족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본 글은 바이에른의 관점에서 서사 된 글로, 타 부족에서 보는 관점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 본 글은 갑작스레 작성 된 글이라, 자료가 부족할 수 있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 본 글에 언급된 타 부족의 설명이나 생각은 상황에 근거한 개인의 추측이므로, 100% 맹신하는건 곤란하며 틀린점이 있으시다면 설명이나 수정 부탁드립니다.


바이에른을 건국하는데 활약 해 주신 수 많은 분들에게 감사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동시에 드립니다. 아울러 이 글을 바이에른의 모든 분들에게 바칩니다.

- 바이에른 제 1대 총독 살아가는이유.



우연으로 시작된 바이에른의 씨앗


로젠다로는 54대륙 코어에서의 열세로 인해, 64대륙과 53대륙의 세미코어를 중심으로 반격을 할 계획을 입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간부층이 두텁지 않고, 살아가는이유의 소심한 성격 탓에 다른 사람을 강제적으로 노예로 만들지 못하고 있던 실정이었다. 다행히도 64대륙은 카르새아린님을 필두로 rpgcast, 내손에걸려만봐, MIZZ님의 지휘 아래 '이나바뉴'가 창설되었지만, 53대륙은 로젠다로에게 있어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나 다를 바 없었다. 결국 53대륙은 FLAG와 푸르미르 양 부족이 대륙의 각각 절반씩을 점유하며, 저항세력 없이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당시 급성 장염을 앓고 있었던 로젠다로의 족장대리인 살아가는이유가 결국 미르의 공격속에 넉다운을 당하게 되었고, 새로시작을 누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살아가는이유는 내심 64대륙 이동을 바라고 있었으나, 결국 53대륙에 떨어지게 되었다. 서버가 만들어진지는 3주일 밖에 안되었던 극초반. 다시 시작하기에는, 새시의 쿨타임인 14일은 너무 길었다. 그리고 1세계 당시, 71대륙을 맨 몸에서부터 개척했었던 투지 역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살아가는이유는 53대륙의 초대를 전담하다시피 하였고, 초대 인원이 너무 많아지자 로젠다로부족으로부터 53대륙 인원을 독립, 로젠다로의 아카데미를 건설하게 되었다. 이상균 작가의 '하얀 로냐프강' 에 나오는 국가 중 하나이며, 척박한 토지와 무력이 명예와 국가를 좌우하는 그곳. '크실' 이었다.


FLAG와의 허무한 개전, 그리고 의미없는 vip와의 통합

53대륙은 위에 언급했듯 푸르미르와 FLAG가 세력을 양분하고 있었고, 특히나 53대륙의 FLAG의 기세는 엄청났다. 결국 크실로서는 FLAG와 친선관계를 맺어야 미르와의 전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FLAG는 친 미르 성향의 부족이었고, 집단공격에 대해서 항의하러 갔을 때, FLAG가 이미 로젠다로 연방에 대해서 적설정을 하고 있었고, 선전포고를 미루고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항의하러 갔었던 살아가는이유는 졸지에 irc에서 선전포고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몇일 뒤, 로젠다로와 vip가 통합, 프로이센 연방이 만들어지고, 크실부족은 바이에른으로 개명하게 되었지만, 바이에른에게 있어 vip와의 통합은 별 다른 이익이 되지 못했다. 간부진이 두터워 진 것도 아니었고 (x불멸x님이 합류한 것을 제외하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분은 없었다), 원래 53대륙 자체에 vip 인원이 없다시피 하였다. (v.i.p의 경우 초반에 많은 유저가 유입되어 54대륙에는 유저가 많았으나, 그 이후 외곽지역 확장에 소홀하여 세미코어지역에는 유저가 없었다. 이는 64대륙의 하노버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크실의 간부가 바이에른의 간부가 되었고, 로젠다로의 족장대리와 크실 총독을 겸하고 있었던 살아가는이유는 vip와의 통합을 위해서 족장자리를 양보, 바이에른 초대총독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갈림길에서

살아가는이유는 내각총리대신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였고, 내각총리대신은 '오래된 정치적 동지' 라는 말로 그를 평가했다. 그랬기에 생각하는 것도, 정책도, 심지어는 여차저차 상황이 안 좋으니 중간에 도망가는(..)것까지 닮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부족의 운영체제에 대한 차이였다.

내각총리대신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구한 반면, 살아가는이유는 각 지방의 지방분권을 추구했다.

그랬기에, 프로이센 연방의 극초반 정책의 화두는 중앙집권 vs 지방분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바이에른이 설립되자마자 해체 될 뻔한 상황도 연출되었었는데, 통합 극초반 당시 프로이센의 인구수는 약 600여명이 약간 안되었던 정도였고, 하노버에 약 300명, 프로이센에 200명, 바이에른에 100여명 정도가 있었다. 그리고 내각총리대신은 중앙집권을 위해 (하노버 부족의 독립사건 직후라서 더더욱 그것을 절실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프로이센과 바이에른 부족을 통합하기를 원했고, 살아가는이유는 53대륙에 미르의 세력확장 저지를 위해서 53대륙에 아카데미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결국 살아가는이유의 뜻이 관철되어, 바이에른은 53대륙은 기점으로 서부로 진출하고, 프로이센은 54대륙에서 최대한 적을 저지하며 63대륙 방면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살아가는이유의 지방분권론은 실패한 이론이 되었다.(제안 한 사람의 역량 부족일지도 모르겠다.)

부족 대 부족간에 소통이 막혔고, 하노버의 경우 기존의 독립 멤버들이 그대로 주요 간부직을 차지, 고인물이 썩어들어 결국 평등한 세상에 흡수되었고, 중앙부족인 프로이센은 유명무실한 황제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바이에른의 초기워팀, 그리고 홀로남은 에페르샤


바이에른의 초기 워팀은, 적어도 필자가 겪어오고 지휘한 워팀 중에서 가장 끈끈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워팀은 동부, 서부, 남부와 훗날 만들어진 북서부의 4개 사단이 있었는데, 무너진 남부를 제외한 3개 사단은 사방에 둘러쌓인 FLAG의 맹공을 몸으로 막아내었다.

당시 바이에른군의 편제를 보자면, 바이에른 총독이자 후방주임참모였던 살아가는이유가 있었고, 총사령관은 쓰리디누리 라는 분이, 동부 사단장으로는 ifyuk3님, 서부 사단장으로는 sysim님, 동부와 서부의 주임참모이자 정탐변태였던 에페르샤님, 그리고 북서부의 사단장은 1세계에서 여우비와 남서련의 맹공을 끝까지 버텨낸 kimth2222님이 담당하였다. 민정관으로는 현 백호의 족장이자, 초대 능력은 미르의 어떤 간부에게도 밀리지 않는 kimdh3326님이 맡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살아가는이유, 쓰리디누리, ifyuk3, 에페르샤 4명이 바이에른의 핵심 간부였고, woto라는 사람이 프로이센을 배신, FLAG에 가입한 이후 공격이 더욱 거세질수록, 4명의 이야기는 새벽이 넘어서까지 이이어졌다.

하지만 갈수록 조직화된 공격에 결국 한정된 병력과 자원으로 방어를 해야 했던 전방 사령부는 항상 힘겨웠고, 모날 모시에 이뤄진 치밀한 공격은, 결국 많은 간부진을 현게의 길로 인도 해 주었다.

사유는 이렇다. 쓰리디누리님은 업무의 특성상, 잦은 출장이 있었고, 그 때마다 다른 간부가 휴가대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전방 유저가 시팅을 할 경우 지원에 차질이 있을 수도 있어, 결국 후방에 있었던 살아가는이유가 휴가대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휴가대리 바통을 넘겨받으려는 찰나, FLAG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쓰리디누리님은 ifyuk3님에게 방어병을 모두 몰아주고 출장을 떠났다. 결국 여차저차하여 대부분의 공격을 방어하였고, 아르키니님의 공격만이 남게 되었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회의 속에서, 다음 공격이 오는 시각은 9시 경이 될 것이라고 추정, 살아가는이유는 새벽6시경에, '부족 메일'로 어느 마을로 공격이 오는지 알려줄테니, 거기에 투석 영웅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6시 30분에 일어나서 8시경에 출근하는 아버지의 패턴을 알고 있던 살아가는이유는 6시에 메일을 보내고, 8시까지 자는 척 하다가 아버지의 출근과 동시에 부족전쟁에 접속했었다. 하지만 투석 영웅은 출발도 해 있지 않았다. irc에 접속하자 ifyuk3님이 irc에 접속은 해 있었다. 관련 내용에 대해서 물어보자, 자기 자신은 irc 쿼리로 알려줄 것이라고 판단 한 것이다. 결국 정보전달의 혼선으로 아르키니님에게 마을 하나를 빼앗기게 되었다. 보복성으로 그 마을에 소행성 공격을 몇 차례 퍼부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고, 자원지원을 통한 역노블도 계산 해 봤으나 1패킷이 모자라서 노블을 생산할 수 없었다.

정말 소심한 성격의 살아가는이유는 정말로 미안 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모든게 자기 잘못마냥 생각되었고, 동시에 투석영웅 지원을 해 주지 않았던 두 간부에게도 화가 났다. 결국 살아가는이유는 그 사건을 끝으로 현게를 타게 되었고, (그 이후 이 인물은 몇달 뒤 '진홍의성흔' 이라는 계정으로 다시 활동하게 된다) 살아가는이유가 현게 타기 전에 쓰리디누리님도 현게를 타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가는이유가 떠나고, 제 2대 총독이었던 ifyuk3님은 엄청난 훼력으로 푸르미르와 FLAG의 인원을 하나하나 격파 해 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이 분이 안계셨다면, 현재 53대륙에 바이에른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ifyuk3님 역시 그 이후 취업에 성공, 결국 현게를 타게 되었다.

그 이후 에페르샤님이 약 2개월간 총독 대행을 맡게 되었고, 11월 초에 비로서 바이에른의 3대 총독으로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도중에 FLAG가 해체, 친 프로이센 연방 성향의 Vcrew가 탄생하고, 이 부족과 동맹을 맺으면서 바이에른은 잠시간의 평화의 시기를 가지게 된다.



흔들리는 프로이센 연방, 그리고 독립 바이에른


프로이센 연방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게 된 계기는, 미르연방의 항복 및 해체였다. 프로이센 연방은 창설 당시부터 연방 족장의 부재화(단군성천님이 계시긴 했지만, 말 그대로 허수아비였다. 심지어는 허수아비 역할마저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은, 4세계 최악의 족장이었다.)가 심각했고, 사실상 부족을 총 책임졌던 내각총리대신, MIZZ님이 현게를 타면서 내각총리대신이 꾸려 놓은 연방의 중앙집권적 체제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여러 사건들에 대해서 각각의 연방부족들은 다른 의견으로 갈등하였으며, 각자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바이에른은 헤센이나 하노버처럼 세력이 크지도 않았으며, 프로이센처럼 부족의 중앙이라는 명분조차 없었다. 거기다가 전 로젠다로 족장대리였던 살아가는이유가 현게를 타고, 같은 연방 전체에 영향을 미칠만한 간부가 딱히 없어, 발언권 역시 약했다. 하지만 바이에른은 어떻게 해서든 연방의 분해를 막고자 노력했으며, 당시 연방 총 회의는 사실상 바이에른의 주관하에 이뤄졌다. 하지만 참석률은 극히 저조했으며,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연방 초창기부터 중재와 관련된 사항은 바이에른의 소관이었다. 한누리의 독립으로 인한 양 부족간의 전쟁을 중재 해 보려고 한 것도 바이에른이었고, 후기 로젠다로를 주창한 비트라이스와의 외교를 중재한 것도 역시 바이에른이었다.)

결국 11월 초, 미르연방이 항복하고 인원 배분과 관련한 프로이센과 헤센간의 엄청난 갈등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프로이센은 산하의 부족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특히 바이에른의 경우는 52,53대륙 전선에서 미르와 치열하게 싸웠음에도 불구, 미르 부족의 항복으로 인한 부족 전체 회의 때 배재되었다.

그 전까지 중재를 위해서 뛰었던 바이에른으로서는, 정작 이익이 걸린 문제에 직면하니 노력하였던 자신들을 배신한 연방에 대해서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연방 내에서의 차별에 반발하여, 프로이센 연방에서 탈퇴하였다. 독립 바이에른의 시작이었다.


계속 된 한누리와의 전쟁


한누리는 프로이센 연방과 적대관계를 맺었고, 바이에른 역시 프로이센 연방의 일원으로서 한누리전에 참전한다. 바이에른의 주요 전장지역은 52대륙과 63-73 접경의 지역이었고, 바이에른은 서부로 진격하면서 52대륙의 한누리와 일전을 벌였다. 물론 바이에른의 독립 직후 약 1달여간의 nap 기간과, 평화의 날 기간 앞뒤로 하루정도 연장한 임시 nap 기간도 있었지만 바이에른은 한누리 부족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뤘다. 바이에른은 한누리와의 전쟁에서 노블 스코어상으로 압도적으로 앞섰고, 한누리 주요 간부진이 '무조건 항복'을 언급 할 정도로 전세가 매우 불리했었지만, 싸울아비의 방병지원과 고점수랭커위주의 방어정책으로, 전선을 무너뜨리는 것 까지는 실패하였다.


바이에른의 세력확장

바이에른은 연방에서 탈퇴 후, 적극적인 외곽장악과 세력확장 정책을 실시하였다. 바이에른은 구비문학님을 중심으로, 제2의 코어였던 73대륙을 기점으로 아카데미를 만들었으며, nap 관계였던 토르 부족을 동맹으로 승격, 그 이후에 바이에른에 흡수하였고, 불어난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62,72대륙을 기점으로 또 다른 아카데미 부족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전통적인 혈맹관계이자, 구 바이에른 출신이 부족 운영을 쥐고 있는 비트라이스 부족을 끌어안았다. 그 결과 바이에른은 과거에 비해 세력이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적어도, 해체 이후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던 프로이센이나 평등한 세상에 흡수되어버린 하노버보다는 훨씬 진취적이었다.


써보지도 못하고 찢긴 조커

하지만 바이에른의 끝은 허무했다. 동부의 장벽이었던 평등한 세상의 대 마에스트로 항복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마에스트로와 맞닥들이게 되었으며 오유와의 전쟁을 반 강요하고, 한누리전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등 싸울아비의 외교정책 역시 바이에른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평등한 세상이 항복한지 이틀도 안되어 부족 해체를 선언하였으며, 현재 모든 부족원은 각각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고 있다.


바이에른 해체로 인한 여파

예상치 못한 바이에른의 해체로 인해 주요 부족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한 편으로는 책임감 없이 부족을 해체한 바이에른 수뇌부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부족을 해체시킴을 통해서 적어도 각 부족의 주요 오피서들의 머리를 한 번 더 굴리게 했다는 점이다.

가장 피해를 본 부족은 바이에른과의 통합을 눈 앞에 두고 있었던 백호부족이었다. 바이에른과의 통합이 물거품이 된건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전세가 역전된 한누리 부족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서 백호 부족과의 nap을 해제한 것이다. 결국 백호부족은 '모든 부족원이 전화를 입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여차저차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싸울아비 부족에 흡수되고만다. 백호의 사례는 부족전쟁에서 제3세력은 결코 흥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부족은 싸울아비 부족이었다. 바이에른 해체로 인해 안 그래도 평등한 세상의 흡수합병으로 남서쪽에 세력을 넓히고 있는 마에스트로의 세력권이 더 확장 된 것이다. 싸울아비로서는 적어도 마에스트로 만큼은 아니더라도 남서쪽에 교두보를 확보 할 필요가 절실했으며, 이것은 바이에른 출신의 유민 포섭, 백호 부족 흡수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미르 이후 남서문제에 상대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던 싸울아비도 남서쪽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마에스트로도 어느정도 수혜는 봤다. '바이에른이 항복 안했어도 너님들은 우리 도시락이라능!' 이라고 말 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서 세력 확장에 방해가 되는 잔가지를 손 안대고 치워버린 격이니 수혜를 안 봤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가장 수혜를 본 부족은 역시나 한누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52대륙의 그 불리했던 상황이 바이에른의 해체로 한 순간에 역전 되어버렸고, 적이었던 유저들이 순식간에 아군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것은 거저 얻어진게 아니며, 한누리 유저들의 근성과, 싸울아비 및 마에스트로 부족의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외교적 노력들이 빛이 발한 것이다. 프로이센 연방도 과거 미르를 상대로 할 때 그랬지만, '부족전쟁은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이 승자' 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준 사례다.


일부 유민들, 특히 바이에른의 코어와 약간 떨어져 있었던 73대륙 이서지역의 부족원들은 '아레나' , '우새시' 같은 부족을 만들어 마에스트로와 평등한 세상에 저항하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부족원이 이탈한 상황에서 오래 버티기는 어려웠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부족은 소멸하였다.


결론


바이에른의 해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실망하거나, 비난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행보가 강렬하거나, 혹은 지조있는 행동은 아닐것이다. 길고 짧은걸 대 보지도 않고 포기해버린 근성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에른이라는 물고기는 어떻게 요리할지 두고보고 있었던 많은 요리사들에게 고민과 일거리를 안겨주었고, 바이에른은 많은 부족 노예들을 해방하였으며, 각자가 자신의 살 길을 위해서 떠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하였다.

게임이란 즐겁게 하는 것이다. 게임은 스트레스를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이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게임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대내외적인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해체를 택했다. 그리고 얼마나 막장스럽게 접을 것인지, 얼마나 웃기게 접을 것인지. 이 밤을 태워가며 이야기 하고 있다.

원문 : http://forum.bujokjeonjaeng.org/showthread.php?t=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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