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전쟁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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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계에서는 이터니티(Eternity) 부족의 내무령(내무장관) 및 여러 잡무 역할로 플레이를 했었다. 세계 판도는 다소 작았지만 한 방위의 패권을 장악하고, 양강세력의 일원으로 부족을 키웠다. 물론 남서 방면의 세력은 서버 통일 부족인 독고다이에게 완전히 깨졌지만. 시간이 많지 않기에, 최대한 압축하여 글을 작성 해 보고자 한다.

6세계 이터니티 이야기

사실 7세계 이터니티는 6세계에서부터 시작된다. 비트라이스(백호)의 최후를 정리한 뒤, 공익근무요원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OO동 주민센터의 업무가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던 2010년 초중순 무렵이었을 것이다. kimdh3326(이하 '킴드')는 다른 세계에서 남서 방면 부족의 재건을 꿈꿨고, 나를 비롯한 구 비트라이스의 몇몇 유저들이 호응하였다. 다만 '로젠다로'라는 이름은 봉인하기로 하였는데, 로젠다로를 상징할 수 있는 사람들도 없을 뿐더러 무력한 중소부족으로 끝난다면 로젠다로라는 이름을 더럽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킴드도 이를 수용하여 새로운 부족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터니티' 였다. 필자가 타르타로스 온라인을 하던 시절 만들었던 길드 이름이기도 하였고, 의미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부족을 만들고 싶기도 하였다. 그렇게 비트라이스의 잔여 세력은 블랙홀과 반 블랙홀 세력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6세계 남서부 외곽에서 '이터니티' 라는 부족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7세계 오픈 공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주요 간부들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7세계로 이주 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6세계는 이미 어느정도 세력정립이 진행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후발 주자로서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신생 서버라면 적어도 이미 세력이 정립된 6세계보다는 더 수월히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가능 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특히나 4세계의 로젠다로 연방의 극초반 시기에 혼자서 모든 것을 담당해야 했고, 그로 인한 뼈아픈 실패의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7세계에서는 (비록 필자를 포함하여 모든 스타팅 인원들이 최상위권 유저집단은 아니었지만)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4세계보다는 느낌이 좋았다.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6세계 이터니티 인원들은, 7세계 오픈과 동시에 남서방면에 마을을 만들었다. 영원의 부족 이터니티의 시작이었다.

7세계 초반 정세와 남서 방면 첫 번째 전쟁

7세계를 각각의 방위별로 살펴보자면, 북서방면은 독고다이 세력의 강세가 돋보일 정도였다. 인력풀도 굉장했다. 북동방면은 구 4세계 북극성의 인원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반 북극성 세력(다이어트, 바람)간의 전쟁이 펼쳐졌다. 남동 방면의 경우 전통적인 선호 대륙인 만큼 여러 부족이 각축전을 벌였고(부족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남서방면에서는 5세계를 기반으로 한 기사단과, 필자가 이끄는 4세계 구 비트라이스 계열의 이터니티, 그리고 5세계 루인 출신의 불꽃이 이끄는 농민의 3파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농민 부족은 남서 방면 여러 부족들에 어그로를 끌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로는 부족의 상위권 유저들을 포섭 해 간 것이다. 특히나 비트라이스 출신 간부들이 몇 명 있다 한들, 이터니티는 필자가 항상 그래왔듯 신규 유저들을 포섭 후 성장시켜가는 부족이었다. 그 중에서 괄목하게 성장하는 부족원을 회유하여가니, 부족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로는 불꽃의 언플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표현은 '저글링' 이었다. 저글링이 떼로 덤비더라도 아콘에 녹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남서방면 양대 거대 부족이었던 기사단과 이터니티에 어그로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다가 필자에게는, 4세계 비트라이스-토르 전을 바탕으로 한 선제 선전포고에서의 좋은 경험도 있었다. 결국 이러저러한 사유들이 쌓여, 이터니티는 남서방면 최초(혹은 세계 최초)로 농민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른다.

반 기사단 동맹 체결의 과정까지

그렇게 선전포고를 한 후, 우리 부족에 접선 해 온 부족은 다름이 아닌 기사단 부족이었다. 기사단 부족은 이터니티에 농민 부족의 제압을 위해 동맹을 제안하였다. 서버 극 초반 방위 1위 부족과 2위 부족의 공조. 역사상 그다지 사례가 없기 때문에 충분히 의심할만 했고, 경계함이 당연했지만 일단 기사단측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만에 하나 기사단+농민의 조합이 되었다면, 남서방위의 나머지 부족이 다 합치더라도 호각 이상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단측에서는 석연찮은 이유로 동맹 대신 nap을 맺자고 제안을 수정하였고, 그 사이에 아인토스에 의해 (가칭)농민 토벌전 중간에 이터니티를 배신 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어가지고 왔다.(물론 정보의 효용성을 제쳐두고, 독단적인 스파이 활동 및 스파이 활동 중간에 그 사실이 발각된 것은 논외로 하겠다.) 사실, 위에 언급한대로 극 초반 방위 1위-2위 간에는 공조보다 격렬한 패권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농민 토벌전의 끝이 보일 무렵, 서로간에 전쟁이 벌어지거나 합병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은 예측 범위 내에 있는 바였다. 물론 합병보다도 결국 전쟁이 벌어지는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 까지. 다른 부족과의 공동 전선이라는 것은 서로간의 신뢰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단은, 본인들이 공동 전선의 전제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만약 이터니티가 이 것을 묵인하고 공동전선을 편다 한들, 효율적인 전선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오히려 오합지졸 연합 vs 정예 부족의 프레임으로 인해, 양 부족 상위 유저의 이탈과 농민의 남서 장악이라는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농민 부족의 불꽃은 조금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사단과 이터니티간의 균열을 예리한 바늘로 꿰뚫었다. 그 균열을 꿰뚫는 방법 역시 정교하였다. 불꽃은 먼저 이터니티 대신, 이터니티의 주요 동맹이던 플레이아데스와 접선하였고, 이후 한넘만팸과 접선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불꽃은, 마지막으로 이터니티의 수뇌부에게 공식적으로 대 기사단 동맹을 제안하였다. 만약 불꽃이 바로 이터니티에 먼저 접선했다면 나로서는 어찌되었든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고, 불꽃의 언론플레이를 잊고 있지 않던 수뇌부 회의에서 농민의 요청을 거절하는 결론이 도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꽃은 이터니티의 동맹에게 먼저 접선하고, 여러 부족을 규합하여 이터니티에 빠른 결단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터니티는 세 부족을 합한 것 보다 큰 부족이었다. 하지만 이 요청을 거절한다면, 이들이 기사단에 갈 것이라는 것은 예측의 범위 내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 이터니티 동맹'이 되고, 이터니티는 기사단의 그것보다 더 빠른 소멸로 이어졌을 것이다.

판단의 시간은 없었다. 모든 것은 불꽃의 의도대로 되었다. 필자가 반 강제적인 양자택일 중 하나를 선택한 순간, 이터니티는 불꽃이 만든 급류에 휩말렸다. '반 기사단 동맹'의 탄생이었다.

반 기사단 동맹과 부족 구성

이후 형식적이며 일사천리로 이뤄진 동맹 및 대(對) 기사단 선전포고 작성 후, 남서 방면은 혼전에 돌입하였다. 불꽃섬집아기, 머니스트 등이 이끄는 이끄는 소수정예의 농민, kimdh3326와 필자가 행정을 담당하고 비트라이스 당시부터 대 토르전에 활약하였던 라테르리(밀크쿠키) 등이 군사 실무를 이끄는 이터니티, 귤-미캉을 포함한 4세계 싸울아비 인원이 뭉친 플레이아데스, 그리고 와랑와탕카 등 4세계 미르 계열 부족원이 모인 한넘만팸은 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한 편으로서 같이 싸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동료들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것이고, 불꽃은 나중에 '농민은 5명, 이터니티를 2명 빼곤 쓸모가 없다' 라고 이야기 했지만.)

물론 기사단 역시 구 세계를 기반으로 한 부족이었기에 기반이 부실하지는 않았지만, 전장을 압도할만한 유력 유저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직력있게 버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심지역에서부터 기사단의 점은 점차 사라져갔다. 아마 필자가 부족전쟁을 했던 기억 중에서, (비록 작은 규모이긴 해도) 한 방위의 패권 전쟁에서 '승리' 했던 것은 이게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돌아봤고, 앞으로도 돌아볼 필자의 부족전쟁 오피서로서의 활동은 대개 후발주자로서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한 투쟁이었고, 대개는 중견부족 수준까지 발전하다가 커지는 부족의 규모만큼 들어오는 주목이나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선발세력으로 참여했던 세계 중 4세계는 총체적 역량의 부족으로 참패를 겪었었다. 필자에게 7세계 이터니티는 선발세력으로서, 그리고 오피서로서, 하나의 방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쥐었던 유일한 세계였다.

부족의 운영은 주석(족장)이었던 kimdh3326을 포함하여 유리카고, 라테르리, morrok, 펠리페 3세님이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셨고, 구 세계에 관록이 있으신 것으로 추정되는 Winged Hussars 님이 많은 조언을 해 주셨다. 군무쪽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방위 1위 부족이 된 것으로 보아 우수한 군사 간부님들도 포진 해 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이디가 기억나지 않는다.(포칼님 정도가 기억나고, 복이사랑님도 이터니티 소속이셨던 느낌도 든다.)

군사쪽의 여러 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필자가 군무에 신경쓰지 않고 내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환경이었다는 것은 이 부족이 나름 이상적인 부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겠다.

북서쪽에서 불어온 눈보라가 동맹을 가르다

여튼 여러 부족원들의 활약으로 기사단의 세력이 축소되어가는 과정 중 디제스터의 남서 집단 이주라던가, 53대륙의 분부족 (이터널)의 설립 등의 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남서방면의 정리는 시간 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대개 현실에서의 문제도 그렇듯, 남서 외부에서 새로운 문제가 불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북서방위와 남동방위의 통일이 완료 된 것이었다.

이 부족들의 방위 통일이 빨랐던 이유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들이 강한 것이었고, 하나는 그들의 적이 약했다는 것이다. 우선 서버 극 초반부터 북서의 독고다이와 남동의 FFA는 강력한 통일세력으로 손꼽히던 부족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대가 되었던 북서의 디제스터, 남동의 청신천영, 건든자 등은 양대 부족에 비해서 약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디제스터는 굉장히 빠른 시기에 독고다이에 의해 평정되어, 부족명을 바꾸고 집단으로 남서에 이주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었다.

여튼 방위를 정리한 북서와 남동 부족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타 방위로의 진출을 추진하는 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행보를 보며 양대 세력간 통합을 한 북동 방면과 달리 남서방면은 반 기사단 동맹 이외의 부족간 통합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외교관계를 강요받을 수 밖에 없는 대내외적 경직성, 그리고 혈맹을 버릴 수 없다는 필자의 경직된 사고가 결과적으로 반 기사단 동맹의 해체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 북서의 독고다이와 남동의 FFA가 이터니티에 접선 해 왔다. 북서와 남동만큼은 아니지만, 남서뱡면의 정리가 끝나던 도중이었기 때문에 이터니티로서도 당연히 다음 단계를 고려 해야 할 단계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부족이 바란 것은 '반 기사단 동맹'과의 동맹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독고다이는 이터니티+농민과의 동맹을, FFA는 이터니티+플레이아데스 와의 동맹을 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당시의 필자는 '동맹은 영원히 계속 되어야 한다'는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반 기사단 동맹 이외에 기사단과의 전쟁에 소극적으로 반응하던, 혹은 양다리를 걸치며 평화로운 상황의 지속만을 꾀했던 군소 부족과의 외교관계를 지속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반 기사단 동맹 중에서도, 규모가 작았던 한넘만팸과도 외교관계를 정리할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농민과 플레이아데스는 이터니티에게 동맹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혈맹' 이라고 생각했다고 할까.

농민은 험악한 관계로 출발하였으나 동맹 이후 대 기사단전을 주도 해 나갔고, 불꽃의 독선적인 리더십을 머니스트님이 중재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불꽃 역시 독선적인 문제는 있었지만 반 기사단 동맹의 승전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당시 오피서진 대부분은 인정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만약 이터니티가 농민과 적이 된다면, 그들을 상대로 승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플레이아데스는 이터니티와 마찬가지로 4세계 기반의 부족이었고, 특히 4세계에서 이터니티의 기반이던 남서의 꿈, 그리고 플레이아데스의 기반이던 운명은 동맹관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기반으로 인해 반 기사단 동맹 이전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부족이었고, 이러한 특수적 관계로 인해 플레이아데스에서 64대륙을 개척하면서 이터니티가 64대륙 개척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물론 플레이아데스는 이터니티에 비해 약한 부족(1/5 수준)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먼저 배신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이터니티로서는 최소한 두 부족과 함께 하는 동맹을 희망했고, 독고다이 혹은 FFA와 협상을 진행 하다보면 결과적으로 세 부족이 함께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두 부족이 이터니티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 낙관은 여지 없이 빗나가버렸다.

술을 마시고 12시 경에 집에 들어와, 알딸딸해진 머리로 IRC에 접속한 어느날. 플레이아데스의 외교관이 반 기사단 동맹 채팅방에 들어와서 한 줄의 선언을 하였다.

'현 시간부로 플레이아데스는 독고다이와 동맹을 체결하고, 현재까지의 모든 외교관계를 초기화한다.'

필자는 모든 일에는 맥락과 개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맥락과 개연성이 높은 작품은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고, 맥락 없이 무작정 파고드는 작품이 혹평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인것 처럼. 지금도 내 상식으로 플레이아데스의 맥락 없는 외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플레이아데스가 남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부족인가? 그것은 아니었다. 반 기사단 동맹의 주연은 농민과 이터니티였다. 연극이나 드라마에 비유하자면 플레이아데스는 조연이었고, 한넘만팸은 엑스트라였다. 대략적인 전력비를 따져본다면 농민40:이터니티48:플레이아데스10:한넘만팸2 였다. 여러 세계에서 수뇌로 활동하던 이들이 모였던 부족인 만큼 자신들의 입지를 몰랐을리는 없을 것이고, 그랬기 때문에 플레이아데스가 반 기사단 동맹을 배신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플레이아데스는 해당 통보 이후, 남서의 여타 중소부족을 모아 '혁명전선' 이라는 부족을 창설하였으나 이내 격퇴당하고 남서 통합부족인 '사신'에 의해 세력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반 기사단 동맹과 사이가 틀어졌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농민불꽃이야 독설을 자주 하긴 했지만, 그것은 동맹 전체를 대상으로 했지 특정 부족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터니티는 필자 자체가 중소부족 오피서 출신인 만큼, 중소부족에 대해 부당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몇 안되는 긍지 중 하나였다. 오히려 64대륙 방면의 개척을 포기하여, 플레이아데스가 해당 지역을 개척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까지 할 정도였다. 당장 전날까지 서로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던 사이이기도 하였다.

지금에 와서 굳이 추측을 하자면, 북서의 독고다이의 수뇌부가 적이되고싶은가, 떠도는쌍칼, 구비문학 등등 4세계 싸울아비(운명) 남부군 분들이었는데, 플레이아데스의 수뇌부 역시 4세계 운명 출신이었던 만큼, 뭔가 교감이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여튼, 필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한,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버린 일을 수습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다.

'현 시간부로 플레이아데스는 독고다이와 동맹을 체결하고, 현재까지의 모든 외교관계를 초기화한다.'

는 한 줄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내용이 내포되어 있었다.

첫번째로는 지금까지 적으로서 싸워왔던 '기사단'과 종전을 한다는 의미이며, 두번째로는 북서를 통일한 독고다이를 위해, 남서진출의 교두보가 된다는 의미였다. 세번째로는 지금까제 함께 아군으로 싸워왔던,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갈라질만한 갈등이 없었던 세 부족과의 동맹 관계도 무효화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단지 외교관계만 초기화 한 것인데, 너무 과잉 반응 하는 것이 아니냐' 가 공식 입장이었던 것 같은데, 위의 맥락을 고려 해 보면 강경대응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플레이아데스의 수뇌부 정도의 경력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러한 반응도 예측 범위에 두고 대응 방법까지 구상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분들이었고, 동맹측 부족원들의 격한 반응을 역으로 언론 플레이에 이용하는 과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도, 반 기사단 동맹때와 마찬가지로 상대편의 의도를 알면서도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통합부족과 현게

플레이아데스의 일방적인 외교관계 철회 후, 남은 세 부족의 수뇌부가 모여 전략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먼저 실시된 것이 세 부족 간의 통합부족 설립이었다. 외부에서는 독고다이라는 강대한 적이 남서 침공을 공식화 하였고, 남서 내부에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기사단의 잔당, 플레이아데스, 듀크 및 기타 군소부족들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세 부족이 연합하여 공동대응 하여야 했다. 혹시 모를 부족, 혹은 부족원의 추가 이탈도 방지할 목적도 있었지만.

그리고 남동 통합부족인 FFA와의 외교를 추진하였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남서 통합부족과 FFA는 누구를 넣고 빼자며 느긋히 협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양 부족이 동맹을 체결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북동 연합부족인 제네시스가 독고다이에 항복하면서 7세계는 양강구도가 형성되었으나, 그 중간 과정에서 삐걱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불꽃의 돌출행동이 계속 시도 된 것이었다.

불꽃은 필자보다 유능한 부족전쟁 유저이고, 오피서였다. 필자가 고작 사람 좋은 모습으로도 할만한 내무쪽에만 겨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불꽃은 필자가 가지지 못한 많은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는 필자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사람 좋은 모습'은 없었다는 것이다. 불꽃은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 이하의 역량을 가진 부족원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 기준은 매우 높았으며, 그 이외의 부족원들에 대하여는 공개포럼에서 대놓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족장이던 농민에서야 자신의 기준대로 부족원을 평가할 수는 있었겠지만, 통합부족에서까지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은 아니었다. 그러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당시 불꽃은 두 세 차례, 독립부족을 만들어 부족을 뛰쳐나가곤 했다. 혼자 나가면 상관 없지만 항상 그와 함께했던, 혹은 그에게 감화당한 유저들까지 끌고가곤 했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스파이에 의한 정보의 유출 방지,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서 일정 유저들로 구성된 '워팀'의 효율성 등을 위해 '부족형 워팀'을 만든다는 개념을 모르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한 부족의 배신으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조율 없이 나갔다 들어오고를 반복하던 그를 절대 곱게 볼 수 없었다. 특히나 남서 전투력의 상당수를 점유하던 그의 돌출 행동에 대해, 쓴소리도 할 수 없었던(비판하면 독고다이에 붙을 것 같으니..) 당시의 상황은 통합 작업에 골몰하던 부족의 여러 수뇌부를 괴롭게 하였다. (특히 필자와, 농민의 조율 역할이던 머니스트님.) 덕분에 남서통합부족의 이름도 마피아, 삼합회, 로떼리아 등등 많이도 바뀌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부족 출입을 반복하던 불꽃은 다행히도 남서 통합부족에 눌러 앉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통합 작업도 완료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터니티의 내무령(내무 장관)이던 필자는 남서 통합부족에서 특별한 직함 없이, 부족의 잡무를 담당하는 행정요원이 되었다. 서버의 초반부라면 모를까 이미 양강체제에 준하는 상황이 된 마당에서 필요한 행정 수요는 많지 않을 터였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는 현게를 타게 된다. 이유는 안과 질환. 필자는 눈이 안좋다. 안경이라는 발명품이 없었다면 시각장애인으로 여생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안경을 벗으면 반 뼘 이상 떨어진 물체는 흐리게 보인다. 눈 하나 때문에 공익근무요원을 갈 정도였으니, 그 나쁨이 글로 얼마나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노파심에 첨언하자면, 시각장애인은 아니다. 안경 쓰면 멀쩡히 잘 보이긴 한다.)

여튼 눈이 침침해서 안과에 가니, 왼쪽 안구가 변질되고 있다고 한다. 그날로 바로 현게를 통보하고 플레이를 마무리지었다. 그래도 다른 세계와 달리, 잡무담당으로서 내 역할이 거의 다 소멸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비해서는 다소 홀가분하게 현게를 탈 수 있었다. 물론 마지막까지 함께 못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몇 달 동안 최대한 컴퓨터 화면을 안 보면서 지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수습이 되고 나서 다시 접속을 해 보니 서버가 마무리 국면에 있었다. 그리고 7세계 이후로 더 이상 부족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으나.. 그 다짐은 2년 뒤에 깨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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