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전쟁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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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상징 문양

HKK
"한국서버 최초의 부족"

천명(1세계)


판데모니엄 (1세계)

붉은곰 (1세계)


단군 (1세계)


천지인 (1세계)

천지인




SAINT (1세계)

세인트



지읒(하늘, CheRevolution)은 한국서버 1세계 및 일부 서버를 플레이한 스타 플레이어, 최상위 랭커이자 부족전쟁 위키를 설립한 역사가이다.

참고로 이 항목은 부족전쟁 위키에 수록된 플레이어를 다룬 문서 중 세번째로 많이 언급된 문서이다. 부족전쟁 위키에 수록된 18,184 개의 전체 문서 중 편집시점 현재 125개의 문서가 이 문서를 가리키고 있다.

1세계

원래는 kallmuli라는 닉네임으로 부족전쟁 한국서버 오픈 초기 북동 방위에서 활약했었다고 한다.

현게 이후 일부 해외서버를 제외하고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한승연 등에 의해 2차 세계대전 직전 복귀했다. 두번째 계정이자 현재까지 플레이 중인 계정은 북동 외곽 대륙이었던 15대륙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플레이 과정에서 계정은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으나 CheRevolution, 지읒, 하늘 순으로 닉네임을 변경했다. 복귀 직후 HKK에 가입했다.

소속되어있던 HKK 부족이 천명 연방에 합류하게 되어 천월로 개편되고나서도 자리를 지켰다. 당시에 대륙장을 거치면서는 천명의 공식적인 라인과는 별도의 외교라인을 형성하는데[1] 이 외교라인의 형성으로 북방전쟁에 있어서 천월과 후속부족인 발해가 전쟁 과정에서 승전보를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또한 천월 당시 부족운영 회의였던 월담의 일원이었다고 본인이 밝힌 바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천월천상천명 연방에서 분리독립하여 독자노선을 걸었던 것에 어떠한 식으로든 연계되었으리라는 것을 추정하기도 하나 공개 석상에서 이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는 없었다.

이후 분리독립 부족인 발해에서 초기 대륙장을 지내나 북방 대전의 흐름에 발해가 직접적으로 엮이게 되자 전쟁 총사령관이자 전방 워팀인 마루워팀의 워팀장을 역임했다. 전쟁 이전 깔아놓았던 당시 전쟁 과정에서 15대륙 일대에 자리잡아있던 중견부족 유머나라를 사실상 엘리시키고 해당 부족의 직접적인 해체까지 이끌어낸다. 이후 USSR과의 부족 대 워팀 성격의 전쟁 및 천랑성과의 레이드 과정을 거치면서 지읒을 비롯한 마루워팀원들은 신대륙에서는 이례적으로 방어랭킹 1페이지를 비롯 전투 랭킹에 있어서 서버 최상위에 올라가게 되는데 이를 통해 주목받는 워팀장으로 게임갤러리 등 당시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2] 지읒이 이후 플레이를 이끌어가는데 있어 이때 얻은 유명세가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평도 일각에 존재한다.[3]

회색 겨울로 인한 발해의 몰락 이후에는 붉은곰을 거친다. 당시 적대부족이던 판데모니엄 연방장 대행을 맡기도해 이후 양 부족 사이의 이중스파이였다는 논란이 있었다. 본인은 각 부족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도록 적절히 운용했다고 후에 진술하였다. 2014년, 역사가 bujoker는 '1세계 40대인물' 중 한 사람으로 지읒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이중스파이 논란에 대해 서술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읽어보니 여전히 지읒을 이중스파이였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본인으로 직접 답변드리자면 이중 스파이보다는 양 부족 사이에서 개인의 활로를 모색했다는게 맞겠네요. 양 부족에서 동시에 간부를 지냈던것도 그런 논리에서였어요. '스파이' 이런게 더 폼새는 날 수도 있지만. 저는 뭐 양 측에서 얻어낸 정보는 개인적으로 유용하게 쓰긴 했어도 반대 진영으로 빼내거나 그런 식은 아니었으니깐요. 자랑은 아니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 부족은 이미 거대부족이던 판데모니엄도 붉은곰도 아닌 이미 전투 부족으로서는 몰락한 뒤의 '발해'라는 생각이 있었던것 같아요. 나중에 단군에 합류할 때까지는 대체적으로 그런 생각으로 플레이 했었네요.[1]

나중에는 붉은곰으로 완전 이적을 양 부족에 선언했고, 전쟁과 외교전에 투입되어 옥빌간쥐와 함께 판데모니엄 연방 해체에 주역이 되었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옥빌간쥐가 남긴 기록을 볼 때 당시 붉은곰 수뇌부는 지읒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붉은곰이 단군으로 흡수합병 되자 단군 간부로 합류했으며 부족의 내무와 인사임명을 총괄하게 된다. 붉은곰 당시 수뇌부의 은근한 견제를 받았던 경력으로 볼 때 의아할 수도 있지만 당시 지읒은 게임갤러리발해 시절을 통해 오히려 단군 수뇌부에 더 가까운 유저였다는 점에서 설명 가능할 것이다. 단군 시절 부족의 상징적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단군 북부군단, 이른바 '북단군'을 통솔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읒 등이 임명했다는 단군부족 총관 출신의 setup은 천지인까지 해체된 이후 "지읒이랑 푸노(푸른노을)는 자기 전선만 챙기기 바빴다"라고 글을 남기며 지읒을 비롯한 단군의 핵심층을 비난하기도 했다.([2])

단군의 천지인 합병 당시 합병에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유보적인 행보를 보이던 FINAL에 최후까지 몸담았다. 하지만 천지인 간부진의 부탁으로 6월 천지인 부족장을 맡으며 천지인 본부족에 합류했고, 주로 북동 전선에서 활약하게 된다. 천지인이라는 부족명을 만들기도 했으며 당시 천지인 소속으로는 유닛사살과 마을점수 등이 대표적으로 높았던 유저였기에 부족의 상징적 인물로 해석되졌고, 1세계 적대부족 수뇌부 사칭사건 당시 불사조바보오태호와 함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천지인 해체 이후 현게 안식처로 히스토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히스토리의 경우 안식처라기보다는 프로젝트 성격의 부족에 가까웠던 부족으로 당시 외교 진행상황이나, 부족 목적인 역사 자료 수집 및 저술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설립 5개월인 2011년 6월, 스스로 만든 히스토리를 나왔고 결국엔 2011년 6월 13일 SAINT에 가입해 1세계 종료 시점까지 몸담고 있다.

2014년 10월 1일 부족전쟁 한국서버에서는 통산 두 번째로 1억점을 돌파했다. 참고로 최초 달성자 이동꾸옹과는 보름 차이이며, 이후 한국서버 종료 시점까지 새로운 1억점 달성자가 나오지 않아 한국서버에서는 유이한 1억점 달성자로 기록되었다.

2014년 10월 남겨진 기록을 참조할 때, SAINT 소속으로 마을 점수는 약 1억 1천 2백만점(112.962.590p)으로 한국서버 2등. 물리친적은 1세계 5등을 기록했다. 최초 개인코어 지역인 15대륙을 비롯해, 5대륙, 22대륙, 25대륙, 32대륙, 33대륙에도 진출하여 압도적인 대륙 랭킹 1등으로 한국서버 최다 대륙 랭킹 1위이다. 14대륙, 16대륙, 35대륙에서는 대륙 랭킹 2등이기도 했다.

1세계 종료일(2014년 12월 27일)까지 계정이 유지되었다. 최종 스코어는 마을 갯수 9792개, 점수 120.068.335점, 한국서버 전체 서버랭킹 2등. 이에 따라 명예의 전당 (1세계)에도 수록되었다. 서버 상위권 유저로 1세계 최종지도의 'Top Players Map(상위 유저 지도)' 등에 등재되었으며, 해당 항목의 지도를 통해 1세계 종료 시점 개인 보유 마을들의 대륙별/지역별 분포를 살펴볼 수 있다.

2세계

2세계에서는 오픈 시절에 기존 1세계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한 CheRevolution 닉네임으로 상위 랭킹권을 다퉜다. 하지만 1세계의 전쟁 발발로 결국 기존 플레이 서버였던 1세계로 돌아갔다. 초기 플레이 당시 월담, BanK에 몸담았었다.

2011년 8월 2세계 통일전쟁국보소녀 부족원으로 복귀했으나 몇달간 활약 후 루즈한 서버 정세에 흥미를 못느꼈는지 후반부에는 결국 계정만 유지 했다고 기록되었다. 당시 우르크족장, 백정 등의 닉네임을 사용했다. (해당 계정은 다시 양도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

국보소녀 연방의 국보소녀S 소속으로 서버를 마감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서버 명예의전당에 수록되었다.

기타 서버

11세계 FFA, 15세계에서는 한칼과칭구들, 수선화H, 만인의 미남 등을 거쳤다.

그 외에도, 일부 해외서버와 한국의 신서버에서 상위 랭커로 활약하기는 했다. 각 서버에서 플레이 하는 초기 몇개월 동안은 착실히 랭킹 경쟁과 전쟁을 수행했으나, 한국 올드서버 유저 특유의 조루 근성으로 대다수 서버에서는 오래 플레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역사가

지읒은 오랜 기간 1세계의 공인 역사가로 활약했던 점, 부족전쟁 위키 건립 등 한국서버에서 가장 널리 알려젼 역사가라고 할 수 있다.

1세계 등 여러 서버 역사의 기록자이자 역사가로서 1세계 연표의 원제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후 1세계에 자신이 설립하기도 했던 히스토리 부족과 여러 자료를 기반으로 부족전쟁 위키 사이트를 설립한다. 설립 이후 설립자이자 공동 관리자로 있었다. 당시 부족전쟁 위키 자료 구서버 편중 현상의 원인으로 지읒이 구서버 기반 유저라는 점이 지목되기도 했다. 이에 2012년 9월 공식적으로는 사임 의사를 밝힌 바 있으나, 부족전쟁 공식포럼에서 위키 관련 게시물에 답글을 달기도 하고 여러 논쟁에도 참여하는 등 현 시점에도 여전히 관리자로 접속하여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역사가 로켓은 스타플레이어로서 지읒은 여러 활약을 통해 관심을 끌었고 한국서버의 역대급 유저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역사가로서의 지읒의 면모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는 점에[4] 아쉬움을 표했다. 로켓에 따르면 역사가로서의 지읒은 "한섭 떠나서 부족전쟁 해외섭에서도 주목받는 유저"인데 넷서버 플레이어들도 "상상못한 전무후무한 부족전쟁 위키를" 설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족전쟁 위키의 설립과 성장은 "넷섭 포럼에서도 여러 스레드에서 떠들 정도로 이팩트" 큰 사건이었으며 "넷섭 어드민들도 포럼글로 유저들과 얘기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3])

친목

게임갤러리 활동 당시 안녕하지읒 같은 '지읒체'를 고안했는데, 1세계에서는 지읒체에 흥미를 느낀 이들에 의해 자음패밀리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평가


이 문단은 '플레이어'로서의 지읒을 평하고 있다. '역사가'로서의 지읒은 역사가 문단을 참고.


1세계를 플레이 한 절대다수의 유저들은 지읒의 여러 면을 한국서버 최상위급 유저라고 평하고 있다. 전쟁(전투실력), 행정(오피셔경력), 성장(개인랭킹)으로 구분되는 부족전쟁의 실력 및 커리어 분류 면에서 지읒은 각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스타플레이어라는 것이다.

발해의 전쟁사령관으로 서버 전체에 이름을 알렸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하여 단군, 천지인에 이르는 전쟁 과정에서 지읒의 전쟁 수행 능력은 잘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1세계를 플레이 한 인원들 중에서는 이견이 나온 적이 없다. 수년째 공방 양 랭킹이 서버 1페이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실제 수치적인 증거가 되곤 한다.

행정 면에서의 지읒은 능력면에서 고평가 받고 있다. 홍우예향담과의 외교적 거래, 여러 부족의 최고 오피셔 경력 등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역사가 불한당은 "북동방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후 몸은 북동에 있으면서도 단군, 천지인 등 서부 지역을 총괄하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 인물로 지읒을 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회주의자임. 자신의야망을 위해 부족고위층과 친목질을 통해 본인의 목적 달성에만 매달린" 인물로 지읒을 평가하곤 한다. 이 주장과 관련해서 역사가 Doomba는 강하게 반론하기도 했다. 지적과 그 반론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 참조. ([4])

성장의 경우에는 마을 갯수와 랭킹이 한국서버 랭킹 2등이며(1세계), 1세계 이외 서버에서도 대부분은 1페이지 랭킹권에 진출했다는 경력으로 증명되었다고 평할 수 있다. 이동꾸옹에 이어 한국서버에서는 통산 두 번째로 1억점을 달성한 유저이기도 하다.[5]

지읒체 등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친목유저로서의 지읒도 잘 알려져 있다. 역사가 역주행은 "한국서버 내에서 지읒 유행어가 도는 등 인기의 핵에 있었던" 유저로 지읒을 지목하고 있다.([5]) Blckgrn68은 지읒은 커뮤니티(겜갤 등)를 활용할줄 알았던 유저였다면서 위키 설립 역시 역사가적인 면모 뿐만 아니라 플레이상의 활용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6]) 하지만 Blckgrn68, 역주행175.114.163.159 등 여러 평가자는 긍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지읒에 대한 아쉬움 역시 친목 행위로 꼽는다. 역주행의 표현에 따르면 "흠으로는 다들 예상하는 모 여성유저에 대한 편애가 과하게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 여성 유저의 정체에 대해서 Blckgrn68는 khu94, 마약파리소녀, 니은, 귀염둥잉 등을 예시로 들고 있다.[6]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다수 역사가는 지읒에 대해 무엇보다도 '근성'을 최고의 장점으로 선정하곤 한다. 불한당은 "분야별로 지읒에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전쟁에 푸른노을, 나나팬저, 성장에 이동꾸옹, 절대마력 등 몇 사람 있을 테지만 그들보다 지읒이 빛나는 것은 여러 분야에서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었고 여태까지 플레이하고 있다는 끈기에 있다"면서 지읒을 "지금까지 남아있는 살아있는 레전드"라고 고평가했다.

여담이지만 2011년 봄, 당시로서는 1세계 기반의 인기 여성 플레이어였고, 이후 한국서버의 대표적인 여족장으로 성장하게 되는 khu94가 당시 플레이 하던 8세계 밀리샤 서버 포럼에  <훼력가에 대한 궁금증 +_+>이라는 제목의 논의를 올린 적이 있다.[7] 이 논의에서 khu94는 1세계의 대표적인 실력자 중의 한 사람으로[7] 지읒을 선정하기도 하였다. 이 목록은 다른 여성 플레이어의 이름 없이 남성 플레이어의 이름으로만 이루어졌기에 이른바 부족전쟁 한국서버의 '여신'이라는 쿠가 인정한 남자들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Mr.10의 논평


논평가인 Mr.10은 2014년 6월 부족전쟁 위키 댓글을 통해 1세계 스타플레이어들에 대한 논평을 남겼다. 이전 논평자들의 의견을 정리해 평했다는 점에 본문으로 인용하여 수록한다. (내부링크는 편집자 추가)


한국서버 2등 유저. 비견할 수 있는 한국서버 1위 유저인 이동꾸옹과는 약 천만점 차이로 1등으로 올라서기는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3등 유저인 기지개와도 약 천만점 차이로 거의 고정적인 한국서버 2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위나 3위가 비교적 한 부족에서 평탄한 부족 라이프를 하며 디파일러형 유저로 평가되는데 반해 지읒은 최전방에서 공도 많았고 동시에 비판도 많은 역경의 부족라이프를 꾸려왔다. 위키 본문이나 아래 달린 댓글만 찬찬히 읽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창 현역유저로 뛸 당시 지읒은 처음에는 방어분야, 뒤에 이어서 오피셔분야와 공격분야에서 차례로 이름을 알린 유저이다. 1페이지 랭커이기는 했지만 현재와 같은 최상위권은 아니었는데 지읒이 최상위로 성장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지읒이 부족장을 지냈던 옛 천지인 부족이 해체되고 나서일 것이다. 이어서 부족을 접지 않고 여전히 부족전쟁에 대한 열정으로 이곳 부족위키를 설립할만한 것은 칭찬해줄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많이 알려진 여성편력(?)이나 이중스파이에 대한 이야기는 지읒이 부족전쟁에 남아있는 한 아무래도 지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바깥고리

주석

  1. 당대 스타플레이어 neverbeok이 이끌고 있던 홍우예향담 동부군, black772천랑성, 우리는강팀 등의 청령과의 교섭이 대표적이다.
  2. 다른 세력보다 주목을 받았던 것은 지읒(ㅈ)이 그 전에 이미 게임갤러리 등에서 상주하던 겜갤러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지읒 본인은 자신에 대해 겜갤러라고 하면 간접적으로 부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3. 쉽게 이야기하자면 겜갤러 지읒이 없었다면 단군 지읒은 나오지 못 했을 것이라는 평이다.
  4.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부족전쟁 내에서 활동하는 역사가들을 고려해보면, 역사가로서의 지읒이 가장 널리 알려져있긴 하다. 다만 역사가 지읒의 명성이 플레이어 지읒의 명성을 따라가지 못 한다는 것이다.
  5. 2014년 10월 1일 달성.
  6. 단군 출신 필자는 리을 등 자음패밀리 내의 여성유저들을 이 목록에 추가하고 싶다.
  7. khu94가 남긴 표현에 따르자면 '타섭 훼력가'와 구분되는 '1섭 훼력가'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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