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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2008년 1월 7일 부족전쟁 서비스 개시와 함께 시작한 첫 번째 서버. 당연히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며 그동안에 수많은 부족들의 흥망성쇠가 있었다.

4년 동안 있었던 일들은 대하서사와 같은 이야기들과 폐인들의 진검승부로 점철된다. 특히 초창기 K-TOP이 패권을 차지하고서부터 몰락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부족전쟁의 많은 유저들에게 각별히 기억되고 있는 부분이다.

여명기

2008년 1월 7일 이노게임스가 게임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최초의 서버인 1세계가 탄생하였다. 1세계는 시작과 함께 많은 유저들을 끌어모았는데, 부족전쟁을 외국서버로 플레이하던 유저들은 물론이고 여기저기에서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인터넷 상에서 부족전쟁에 대한 홍보와 전파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겜갤의 누리꾼들은 '하루에 10분만 하면 되는 게임'이라면고 홍보하였다. [1] 이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족전쟁에 관심을 갖고 게임에 접속해 마을을 만들었다.

유저가 늘어나면서 길드 개념의 부족도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천하통일의 꿈을 품고 부족이 개설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구성자들이 자체 부족을 만들어 서로 도와가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바위와 같이 현실 상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친 곳도 존재하였다.

특이하게도 1세계는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의 부족들이 초반 강세를 보인 곳이었다. 사실 1세계만큼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의 부족이 강세였던 곳은 없다. 2세계겜갤을 중심으로 세력을 갖췄던 적이 있긴 했지만, 과연 그것이 실제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리 인기 열풍이 불어도 수 개월이 지나면 그 인기도 급속도로 냉각되는 인터넷의 특성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1세계의 이러한 특징은 앞서 서술된 바와 같이 많은 부족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넘어와 단체로 게임을 시작하고 부족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후 서술되는 많은 부족들 중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한다면, 바로 이런 부족들이 성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08년 1세계의 춘추전국시대에 이어 08~09시기에 있었던 회색겨울 사건을 거치면서 부족의 몰락이나 흡수합병이 많았기 때문에 현재 이들 세력은 전멸하였다.

퍼스트 콘택트, 격랑의 초반

최초의 부족은 HKK(Holy Korea Knignt)로 1월 7일 19시 27분에 창설되었다. 참고로 이 부족은 그동안의 격랑 속에서 중반까지 어떻게든 버텨나갔다. 물론 무운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의 부족들이 대거 등장했고, 크게 성장했다. 웹게임 전문 네이버카페 WGSC, 무협/판타지 연재사이트 문피아, 서브컬쳐 동호회 루리웹과 타임문넷, IT 관련 커뮤니티 클리앙, 유머사이트 알지롱넷, 게임 전문 다음카페 유로파, 네이버카페 미디블 토탈워 커뮤니티, 게임 마비노기 커뮤니티인 마비노기타임즈, 인터켓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 추가 서술바람.

처음 우후죽순 부족들이 창설되는 시기를 바로 지나치고 부족랭킹 1위를 차지했던 곳은 네이버 웹게임 카페였던 [[WGSC]]. 그리고 2위로 ROME였다. [[WGSC]]는 웹게임 전문이라는 카페의 명성을 후광으로, ROME는 초대신공을 통해 인원들을 단숨에 규합하여 상위권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짝 추격하듯 인원은 앞서 둘에 비해 적은 편이었지만 외국서버 경험자들이 다수 포진해있던 K-TOP제국이 3위, 4위로 따라가고 있었다.

1월 17일 한국서버 최초의 부족 간 전쟁이 벌어졌다. 타 웹게임에서 단체로 건너온 SAINT 부족과 알지롱넷의 RG의 당사자로, RG 측에서 선전포고를 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전쟁의 이유는 SAINT 측에서 RG 측 부족원에게 정탐병을 보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2] 참고로 이 전쟁은 동년 7월 10일 RG 측이 베어즈 측으로 흡수합병되면서 SAINT-RG 전쟁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당시에 베어즈 부족은 SAINT와 전쟁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최창기 전쟁이며 RG 소속이었던 유저 중에 북서의 여럿은 후일 전설적인 이름이 되었다.

10일 만에 전쟁이 발생해서 다들 놀라워했지만, 부족전쟁의 특징상 빠른 발전과 정복 활동이 가능하고 양 부족은 이미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기실 이미 많은 부족들이 10일 동안 자신들의 조직을 갖추고 외교 활동에 나서고 있는 편이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북서에서도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바로 네이버 미디블 토탈워 커뮤니티 카페의 MTW와 이 카페에서 분쟁 끝에 탈퇴한 벤더라는 유저가 창설한 북서련 간에 전쟁이었다. 커뮤니티 자체의 내부 분쟁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부족전쟁에서 전쟁으로 비화된 특이 케이스의 사건이다. MTW골드시티와 연합전선을 펼쳐 북서련을 공격했다. 이 사태는 북서련의 족장 벤더가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후 MTW북서련을 잠재적인 적으로 규정했고, 이 선택은 옳았던 것이 된다.

사족으로 당시 MTW는 아직 밀집도의 개념이 등장하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매니저 노블리스의 명에 따라 북서지역에만 마을을 형성시켰다. 다른 부족들은 방위에 상관없이 자신의 부족원들을 두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밀집도 작전은 후에 MTW가 북서의 강자로 거듭나는 주춧돌이었다. 북서련과의 충돌에서 과감한 자신감은 이 밀집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1월 말 즈음에 WGSC의 랭커들이 부족을 이적하고 WGSC 부족이 쇠락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다가 부족전쟁 오픈 3주째가 되던 1월 28일 끝내 해체된다.

이 사태는 1월 중순 경에 WGSC의 부족장 봄날이 무부족 상태에 있었던 PlamTX에게 마을을 약탈 당하면서 일어났다. PlamTX는 게임을 접기 전에 강한 부족의 부족장을 공격해보자는 생각으로 공격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봄날은 부족의 힘을 믿고 영농을 즐기며 부족한 실력을 기르지 않다가 마을을 약탈 당하는 치욕 아닌 치욕을 겪고 말았다. 그는 분노하며 부족원들에게 보복 공격을 지시했다. 부족원들은 바로 직전에 ROME간지트롤이라는 유저가 WGSC 부족원의 마을만을 노리고 공격해오는 것 때문에 그를 토벌하면서 생긴 병력 손실을 복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WGSC 측의 토벌은 강행되었다.

한편 상대방의 영농 플레이로 졸지에 유명 부족의 부족장을 약탈해버린 PlamTX는 공격 후에 일어날 큰 소란을 예상하며 하루를 보냈지만 의외로 반응이 없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제국 측에 가입해버린다. 난처해진 상황에도 WGSC 측은 PlamTX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제국은 이에 방어병을 지원하며 이를 격퇴해낸다. 봄날은 거만한 내용의 메일을 제국 측에 전달해보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사건의 전말이 공식 포럼에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WGSC 측의 고위 랭커들이 부족장에게 불만을 품고 부족을 탈퇴하게 되었고, WGSC 카페에서는 충격을 먹었는지 '본 카페의 명성에 누를 끼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부족을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사건과 후일 타 웹게임에서의 비슷한 사건을 계기로 WGSC 카페는 1년 넘게 WGSC 자체의 길드 생성을 금지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 해체로 [[WGSC]]의 부족원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졌고 고위 랭커들은 각 상위 부족의 스카웃이 되었다.

2월 15일 [[WGSC]]의 허무한 해체에 이어 ROME도 어이없는 해체 과정을 밟았다. 많은 숫자를 자랑하는 외적인 모습과 달리 ROME은 내실이 다져지지 않고 있었는데, 이러면서 쌓인 문제들이 SAINT와 전쟁을 치르면서 터져나온 것이다.

ROME은 질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유저들을 부족에 가입시켰고 이들 대부분은 주변의 상위 부족의 유저들에게 공격당해 생광화되거나 노블을 당해버렸다. 그리고 IRC 유저와 IRC를 사용하지 않는 유저들 간에 불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게다가 SAINT와의 전쟁에서 사실상 대(對) SAINT 동맹의 수장국 포지션에 있는 ROME이 다른 동맹 부족과 공격을 할 때 자신들만 훼이크 공격을 보낸 것이 발각되면서 타 부족의 신의까지 잃어버렸다. 치명적인 문제는 최후의 부족장이자 당시 나이가 중학생 정도에 불과하던 Starting Fury의 행동이었다. Starting FurySAINT와의 전쟁에서 언론플레이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며(교차 검증 필요!), 부족원들에게 무리한 방어 지원을 요구했는데 이때 불응시에 척살하겠다는 강수까지 둬버리면서 그동안 누적되어 있던 부족원들의 불만이 한꺼번이 폭발한 것이다. ROME 출신 유저는 당시 부족장 Starting Fury을 공격하고 싶어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불만은 아예 부족 분열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겁을 먹거나 분노했을 Starting Fury는 아예 부족을 해체하는 것으로 이 상황을 결론짓는다. 이때 소수 무리만이 새로운 이름을 걸었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다른 부족에 합류했다.[3]

[[WGSC]]와 ROME의 허무한 끝은 K-TOP제국의 비약적인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초창기의 유저들은 [[WGSC]]와 ROME이 나중에 최강자를 두고 결전을 벌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부족전쟁의 흥망성쇠는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사실을 이미 이때 암시하고 있었던 거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어차피 1위는 이미 15일에 K-TOP이 챙겨갔지만,


여튼 K-TOP제국이 어떤 운명을 겪는지는 이후를 계속 읽어보도록 하자.

참고로 앞서의 둘이 사라졌다고 해도 K-TOP제국이 계속 그 뒤만을 차지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K-TOP이나 제국에는 외국서버 경험자들이 다른 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이 당시에 전투 스킬은 거의 보급화되지 않은 상태. 공병과 방병의 구성비율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 증명이었는지 ROME은 외국서버 플레이로부터 경험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 SAINT에게 고전하고 있었다. 아마 앞서 두 부족이 무너지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머지 않은 미래에 K-TOP에게 패자의 자리를 빼앗겼을 것이다. 결국 초기의 해프닝인 셈이다.

K-TOP은 1위가 된 이후 오만한 강자로 자리잡았다. 워팀을 중심으로 뭉친 그들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를 공략했다. 이는 나중에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증명되었고, 다른 부족들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1세계 유저들은 K-TOP을 실제로 경외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었을 정도다. 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영원히 패자로 자리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많았다.

대(對) 세인트 동맹, 그리고 전쟁

SAINT (1세계)

세인트.jpg



2월 15일 이전 전쟁과는 달리 특정 부족을 대상으로 복수의 부족이 공동 전선으로 협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대(對) SAINT 전쟁이다. 앞서 언급했던 SAINTRG의 전쟁에서 RG 측은 언론플레이를 통해 대규모 연합을 결성하도록 유도해냈다. SAINT 측에 피해를 입으면서 내부 불만이 축적된 레베비, 마비노기타임즈(부족타임즈의 전신), ROME 등이 이에 호응하였다.

이 전쟁으로 SAINT 부족의 미래는 암울해보였다. 그들은 더 많고 강한 상대로 맞서야 되었다. 상대는 수백 명이 가입한 부족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전체 인원만 천 명을 넘고 있었다. 이미 세력을 불렸던 다만 SAINT는 약탈이라는 게임 상의 플레이를 충실하게 한 것 뿐인데 이렇게까지 실력행사에 나서야 되었냐는 후일의 비판여론이 존재하기도 하였을 정도로 당시의 집단행동은 대단한 규모였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약탈 부족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부족원 하나하나가 소중한 전력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만일 한 명이라도 손실이 된다면 그로 인해 입는 타격은 상당히 아플 수밖에 없었다. 만일 상대 부족원들이 노블 테크를 포기해서라도 숫자를 통한 개싸움으로 난전 상황을 유도시킨다면 부족의 미래조차 암담했다.

당시 대(對) SAINT 동맹의 부족들은 설날 기간을 이용하여 공격계획을 준비했다. 연휴로 인해 상대의 접속률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시점을 노리겠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대(對) SAINT 동맹의 조직력은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해 당시의 많은 이들이 간과한 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먼저 대(對) SAINT 동맹이었던 레베비, 마비노기타임즈, ROME, RG 중에서 SAINT만큼 훌륭한 게임 실력을 지닌 유저의 숫자가 몇 되지 않았다. 많은 인원들은 영농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전방위 부족으로 밀집도 개념이 실현되어 있지 않았다. 이 점에서 SAINT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돋보이는 조직력이었다. 거리가 멀더라도 고립된 우군을 구원하기 위해 집요하게 달려들었던 SAINT 유저들과 달리 대(對) SAINT 동맹의 유저들은 제각각 따로 놀았다. 이를 지휘해야 되는 통합된 지도부도 없었다. 더욱이 같은 깃발 아래 모인 부족들끼리 상호 불신을 하고 있었다. ROME은 2위라는 직위와 최대 규모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페이크 공격만을 보내거나 연합공격계획에 불참하는 등의 사건을 저짐으로서 스스로 문제에 불길을 부치는 행위를 했다. 이마저도 대(對) SAINT 동맹의 붕괴 직전에 가면 각 부족의 외교 채널은 거의 단절되거나 평시 수준으로 회귀되어 있었다.

정작 유일한 전쟁계획이었던 설날 공세는 사전에 정보가 SAINT 측에 흘러나가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동맹은 수적인 우세를 이용해 여기저기서 고립된 SAINT 유저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대부분은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전황은 SAINT 측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SAINT는 주변에 산재한 적들로부터 포위되었지만 반대로 주변에 다수의 약탈지들을 확보한 상황이기도 했다. SAINT는 이들을 하나하나 공략해나갔고, 공략하면서 약탈한 자원을 바탕으로 다시 공략할 공격병력을 생산해냈다. '자원을 긁어모아 공격->약탈->약탈한 자원으로 병력 생산 및 테크 상승->약탈한 자원으로 뽑은 병력을 가지고 공격->약탈->이후 반복'이 진행된 것이다. 이런 탓에 동맹은 오히려 전쟁으로 SAINT의 양분이 되어주었다. 이 상황이 여기저기서 일어나자 피해를 입은 유저들은 구원을 호소했다. 처음에는 이 피해가 서너 곳이라 눈감을 정도였지만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레베비의 경우에는 우세하던 지역의 전력비가 역전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4]

ROME의 지도력 부재는 크나큰 패책이었다. 규모에 비해 밀집도 개념이 실현되지 않아 곳곳에 세력이 분산되어 있었고 동맹과의 연합전선에서 보인 페이크 공격 등의 불성실한 참여로 다른 동맹 부족으로부터 성토를 받은데다 정작 내홍도 일어나고 있었다. 전쟁 회의론까지도 고개를 들었지만 소년 부족장은 강압적으로 나서고 오히려 병력 징발을 강요하였다. 결국 앞서의 항목에서 서술했던 ROME의 해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동맹의 운명을 대표하게 되었다.

동맹은 ROME이라는 세력을 잃고 급속도로 나락에 빠져들었다. SAINT의 전력이 상승하면서 이후의 전쟁양상은 오히려 SAINT의 소탕전으로 변모하기까지 했다.

레베비는 이때 입은 피해 속에서도 결사항전을 계속하였지만 그들과 동맹이었던 베어즈 부족이 SAINT의 사주에 의해 기습적인 배신을 감행함으로서 결국 몰락해 해체하고 말았다. SAINT는 사전에 부족원 명단을 확보했기 때문에 해체 이후의 유저들에 대해 도피성 가입 룰을 적용해 끝까지 추적했다.

RG는 이후로 세력이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SAINT와의 전쟁 상태 속에서 놓여 있었다. NFT와의 합병이 진행되었지만 SAINT 측이 NFT에 항의하면서 불발되었다.

24대륙과 74대륙에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의 발전 가능성도 고려해볼 수 있었으나 간부 대다수가 갑작스러운 차단을 먹은 사태가 발생하면서 베어즈와의 합병이 진행되었다. 물론 베어즈SAINT와 전쟁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앞서 상황은 마찬가지인 셈이었지만 인원들이 부족 이동을 완료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RG의 사람들은 과거 자신들과 함께 SAINT에 맞서 싸웠던 부족타임즈SAINT가 합병해 성장한 불사조와 함께 베어즈 전쟁에 가담하는 사태에 맞딱들이게 되고 만다. RG 출신의 유저들은 계속하여 고되고 험난한 여정을 겪어야만 하였다.

그리고 앞서의 이들과는 전혀 상반된 운명을 지닌 부족도 있었다. 바로 마비노기타임즈였다. 이들도 피해는 늘어나고, 외교 채널은 가동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단독으로 SAINT와 휴전협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추진한 마비노기타임즈의 부족장은 ROME을 파멸에 몰아간 부족장과 비슷한 나이대의 청소년이었다. 오피서들 중에 일부는 결사항전을 주장했지만 부족장은 나중에 자신의 직위를 걸고 휴전을 이뤄내었다. 그러나 외교적 결정권은 투표에 의한 것이었던 부족 내규를 위반한 결과 그는 불신임으로 퇴출되고 말았지만 이 선택 하나로 마비노기타임즈는 길고 긴 역사의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

참고로 이때 전쟁에서 밀리던 RGSAINT의 세력이 적은 북서지역에서 세력 재기를 노렸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MTWRG를 기습 공격하였다. 이 전쟁은 같은 북서였음에도 대륙이 달랐던 상황 때문에 레베비의 중재로 종결되어졌지만, 전쟁 과정에서 MTWSAINT와 동맹을 맺게 되었다. SAINTMTW의 발전 가능성을 주목했고 이는 나중에 증명되었다. 참고로 RG베어즈로 건너가고 MTW베어즈와 외교관계를 해지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RG의 가련한 운명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최초의 대전쟁으로서 길고긴 악연은 SAINT불사조로, RG붉은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혹자는 2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여기에서부터 찾고 있기도 하다. 단 WW2라는 대사건은 K-TOP을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을 두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접근법은 결과론적일 수도 있다.

K-TOP과 제국의 발전

K-TOP (1세계)
한국서버 최초 패권부족


[[WGSC]]와 ROME의 몰락으로 유저를 흡수하고 부족랭킹을 그대로 이어받아 1위, 2위를 나눠먹은 측은 바로 K-TOP제국이었다. 이 두 부족에는 외국서버 경험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부족전쟁을 어떻게 플레이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다만 K-TOP은 오랫동안 외국서버를 플레이해온 넷섭 6세계 출신자들이었고, 제국은 넷섭 12세계 출신자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이들끼리는 사실 친한 편이었다.

K-TOP은 워팀을 중심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오피서가 존재하는 형태의 부족이었다. 반면에 제국은 황제를 자처하는 부족장과 그 휘하의 체계화된 관료 조직이 존재하는 형태의 부족이었다. 오만한 권위를 양자 모두 지니긴 하였지만 효율적인 전쟁기계는 K-TOP이었다. 워팀 중심의 부족 형태는 이후의 부족들의 모델이었기 때문에 이미 초창기부터 실현된 모습은 그야말로 강자 그 자체였다. 다만 제국도 서버 유저랭킹 1위의 익사르를 데리고 있는 등으로 강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두 부족은 코어를 중심으로 뭉쳤고 많은 사람들은 이 모습에 두 부족이 패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리고 유일한 강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은근히 기대하였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직전까지 K-TOP이나 제국이나 관계는 유연한 편이었다. 외국서버 경험자들은 서로 같이 플레이하면서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비록 라이벌 관계까지 되었지만 1차 세계대전이라는 극한 상황으로까지 몰릴 줄은 심지어 제국의 유저들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노블 시즌이 되면서 이에 대한 양 측의 분쟁, 그리고 제국의 부족장 코넬리우스의 오만한 행동은 부족의 위신은 물론 외교력마저 갉아먹으면서 양 측의 관계를 급냉각시켜버리고 말았다.

참고로 제국의 부족장이었던 코넬리우스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는 많은 이들이 회고하는데 무능력하고 오만한 군주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스스로를 황제라고 자청하면서 상대방에게 하대하는 말투와 행위, IRC를 궁정이라고 하면서 궁정예의를 강요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타 부족의 외교관에게 호통을 치는 역할놀이, 부족한 전략적 안목과 고집불통 등은 제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등공신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WW1 발발

애시당초 K-TOP제국의 충돌은 많은 이들의 바램(?)과 예측처럼 일어나야 될 일이었다. 코어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문제는 언? 가는 터질 화약고와도 같았다. 그 화약고에 점화된 불꽃은 바로 노블 분쟁이었다. 누가 회광이나 중소부족의 마을을 집어먹는지를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고갔으며 노블이 충돌하는 일이 있다면 심각한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지금은 기록유실로 찾을 수가 없으나 서로 공개했던 외교 관련 로그들은 막장 속에서 헤엄치는 그들의 험악한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제국K-TOP을 패자의 자리에서 내쫓기 위해 대(對) K-TOP 연합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로 SAINT바위와 삼각동맹을 결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특정 대상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자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제국의 수뇌부가 준비하던 것과는 달리 휘하의 부족원들은 K-TOP과의 험악한 관계에도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거나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다. 전파가 되지 않은 것인지 증인의 부족함인지는 교차 비교를 해야겠지만 제국의 전쟁준비가 의외로 허술했다는 반증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K-TOP제국의 이런 정황을 첩보 노선을 통해 파악한 것 같다. 주사위는 던저졌다. K-TOP제국보다 며칠 앞서서 기습적인 전면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08년 3월 3일 00시를 기점으로 K-TOP제국을 상대로 선전포고와 동시에 대규모 공세에 돌입했다. 이 공격에 제국은 당황하며 대응이 적절치 못하게 전개, K-TOP의 눈부신 속공 속에서 주요 랭커들이 무너져내렸다. 며칠 사이에 유저랭킹 1위의 익사르도 이때 노블당해 엘리되는 치욕을 겪었다. 공격이 시작될 때 코넬리우스SAINT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협조 회의를 열었는데 지원단의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 방향을 잘못 판단하는 미스를 범해버렸고 그것은 초전에 커다란 피해를 불러일으키는 결과로 작용된 것 같다. 결국 코넬리우스는 무너지는 전선 속에서 자신의 마을도 빼앗기고 말았다. 또 SAINT바위는 불리한 전황과 고압적인 코넬리우스의 지휘에 질려버린 나머지 제국에 대한 방어지원을 포기하고 전쟁에서 이탈하였다. 당시 SAINT한민족연합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제2전선을 유지하는 일은 힘들었고, K-TOP으로부터도 방어지원에 대한 정황이 노출되어 외교적인 압력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들은 K-TOP과 협상 끝에 불안하지만 전화가 미치지 않을 수 있도록 외교 관계를 정리했다.

전쟁은 이렇게 속전속결로 끝날 듯 보였지만 제국은 많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동맹을 찾아 전쟁을 계속했다. K-TOP의 승리는 유일무이의 패자로의 등극을 의미했다. 많은 부족들은 전쟁 이전부터 첫 번째 최강자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결국 행동으로 표출된 부족이 바로 카타르시스(당시에는 시나브로)와 NFT였다. 3월 5일 NFTK-TOP 공격계획이 유출되면서 즉각 선전포고했고, 동월 8일에는 카타르시스K-TOP에 선전포고했다. NFT는 번역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발전한 부족으로 부족랭킹 1페이지에 안착하고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카타르시스ROME과 같이 초대신공을 통해 다수의 부족원을 보유한 인해전술 작전을 펼치는 부족이었다. 대(對) K-TOP 동맹은 코어에서의 결전 대신에 코어 외곽에서 K-TOP을 봉쇄하고 억제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NFT는 코어에서 K-TOP과 치열하게 교전했다. 이로 인하여 전쟁은 장기화 양상에 빠져들었다.

물론 이 경우와 반대되는 사건도 존재한다. 전쟁 즈음에 제국HKK 측의 부족장 마을을 노블함으로서 일어난 전쟁으로 피폐해진 HKK 부족은 이 사건으로 상황이 반전되어 K-TOP과 동맹까지 체결하고 부족을 재건할 수 있는 든든한 우방을 확보하였다.

장기화 사태의 원인이 된 NFT카타르시스는 당시 기류처럼 흐르던 K-TOP에 대한 견제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두 부족은 이러한 이유를 들고 전쟁에 참가하였다. K-TOP의 1위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견제론은 외국서버 출신의 팀홀튼이라는 유저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K-TOP 출신의 레벨리온이었다. 실질적인 영향력은 전자의 인물에게 있었지만, 후자의 인물은 불필요한 언행으로 인하여 주목을 받았다. 다만 SAINTBAWIS는 이런 견제론에 영향을 받아 직접 참가하였음에도 전황을 보고 신속히 손을 뗐지만 NFT카타르시스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고 만다.

전쟁은 NFT카타르시스의 참전으로 장기화 되었고, 이와 더불어 K-TOP이 초전에서 보인 눈부신 승리는 전쟁 중반과 그 이후로 수개월 동안에 지속되는 1세계의 춘추전국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 시기의 부족들은 K-TOP이 현재의 전쟁을 종식하고 새로운 확장대상 즉 전쟁대상을 찾기 전에 서둘러 코어 외곽에서부터 힘을 길러놓아 장차의 상황에 대응하려고 했다.

전쟁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1차 세계대전은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전쟁 하나로 의미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전황은 K-TOP에 압도적이었고, 언제 적대 부족들이 무너지느냐가 관건이었을 뿐이다. NFT의 항전은 안타깝게도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시도였다. 이런 까닭에 많은 부족 유저들은 이 전쟁 자체에 대한 관심을 줄어들었다. 물론 상위 부족이나 K-TOP과 조우하는 부족의 오피서들은 전쟁의 양상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그 결과 NFT의 항복과 해체 직후 유저들이 흩어질때 이를 스카웃하는 성과를 올렸다.

K-TOP은 코어를 잠식하였으며 이에 대항하는 세 부족은 한 번 기울어진 전황을 뒤엎지 못했다.

카타르시스는 부족 내부의 통제도 어려운 상태에서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며 자 부족원들이 수도 없이 노블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NFT는 길고 외로운 싸움을 타개하기 위하여 RG 합병 시도를 하나 SAINT에서 항의를 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신규 유저의 영입이 계속 이뤄지는것 같았으마 다들 전쟁으로 지쳐갔다. 제국은 사실상 코어에서 축출당한 뒤에 와신상담을 하는 상황이었다. K-TOP이 코어를 잡아먹고 그곳에서 뿜어나 나오는 힘은 계속하여 거대해졌기에 이미 전쟁의 향방은 결정되어 있었다.

NFT에서 흑영대 등의 이탈(현재로서는 진의 해명이 상당히 어렵지만 NFT가 후일 도모를 위해 빼돌린 전력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등으로 전력이 약하되었다. 이러한 분열과 전쟁의 위기 등이 종합된 결과 NFT는 눈물을 머금고 항복해야 했다. K-TOP은 항전의 의지를 완전히 분쇄해버리고 이들을 자신의 부족에 편입시켰다. 이때 NFT의 부족장 지르곤도 복수심을 품고 K-TOP의 깃발 아래에 들어가야 하였다. 그리고 K-TOP이 아닌 다른 부족행을 택한 유저들에게는 응징이 뒤따랐다. 집요한 공격이나 다른 부족으로 이동을 할 경우에 외교적인 분쟁을 일으켜서 상대 부족에 굴욕적인 조건을 내걸고 강요하기까지 한 것이다. NFT햄갤러즈가 겪었던 운명과 비슷하게 K-TOP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격랑 속에 휘말려 흩어져갔다.

카타르시스는 내부 문제로 몰락한 편이다. 2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족원 숫자는 그 자체가 무기였지만, 반대로 약점이기도 한 양날의 검이었다. 내부 통제 실패와 문어발 외교는 부족의 미래를 어둡게 했고 결국에는 부족 자체가 방위별로 해체되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이들 부족은 춘추전국시대 후반까지 명맥을 이어갔지만 결국 주변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제국은 초전의 큰 피해를 수습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코어 외곽의 북동 방면으로 근거지를 옮기며 항전을 계속하였지만 NFT의 항복이 이루어진 이후 얼마되지 않아 이들도 항복을 선언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부족을 수습해 부족명을 기사단이라고 새로 정하고 문제의 해결을 갈구하였다. 그러나 K-TOP은 전쟁 이후의 발전이 되어야 하는 밑거름의 필요성과 복수심의 원인이었는지 엘리전을 선포하고 집요하게 전쟁을 계속했다. 후일 이것은 기사단을 흡수한 판데모니엄2차 세계대전에 가담해 K-TOP과 전쟁을 벌이는 원인이 되었다.

이로서 K-TOP1세계 최초 대전쟁의 승자가 되었다. 많은 이들은 제국과의 진검승부를 바랬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기대감을 접게 만들었다. 하지만 K-TOP이 이룬 업적인 실로 대단하다. 부족랭킹 1페이지(1위~20위)의 부족들이었던 제국, NFT, 카타르시스, SAINT, 바위의 도전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전쟁 기간 그리고 이후로 K-TOP은 경외의 대상이자 두려움과 질시, 그리고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제 부족전쟁의 유저들은 08년 8월이 오기까지 K-TOP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하였다. 춘추전국시대는 K-TOP의 권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앞서 서술하였던대로 K-TOP은 패자로서 오만한 태도를 어김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부족보다도 우위에 서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K-TOP이 으름장을 내놓으면 다른 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아무리 치욕적이고 피해가 큰 요구라도 무조건 들어줘야 되는 상황이 여럿 연출되었다. NFT 출신 유저에 대한 처리 문제에서 K-TOP의 모습이나, 워팀이 1대1 룰을 악용해 상대 부족을 협박한 뒤에 목표를 강탈하는 짓거리, 노블 분쟁이 일어나면 어떤 상황이더라도 무조건 자신 측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논리 등이 바로 그들의 패악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으킨 춘추전국시대는 K-TOP의 서슬퍼른 권위가 모든 부족에게 영향을 끼치는 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다. 유력 부족들은 K-TOP의 눈치를 보아가며 사실상 굴복한 상태서 K-TOP이 아닌 다른 상대를 대상으로 외교와 무력을 총동원해서 굴복과 협상, 합병이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었다. 부족들은 이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혹은 자유롭고자 하는 타부족의 의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힘을 길러 생존투쟁을 시작한다.

이제 코어에서의 전쟁은 K-TOP의 정복으로 끝났고, 새로운 반(反) K-TOP의 기치와 새로운 파워는 코어를 포위하는 동서남북의 외곽 방위로부터 이어지게 된다.


계속되는 혼란, 춘추전국시대

K-TOP에 의한 지배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부족들은 나름의 생존로를 탐색해나갔다. 그들은 K-TOP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신과 똑같이 살아남으려는 다른 부족으로부터도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과 외교를 반복했다. 1페이지의 유력 부족들은 K-TOP에게 굴복에 가까운 외교 관계를 맺고 친선을 유지하면서 코어가 아닌 다른 방향에서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때부터 밀집도 개념이 실현되기 시작하였으며 각 부족은 자신들만의 코어를 형성하여 근거지를 확보했다.

이 시기, 그러니까 1세계의 춘추전국시대는 이후의 다른 서버와는 차이점을 지녔다. 다른 서버의 최강 부족은 한 번 최강자에 오르게 되면 주변의 경쟁상대를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며 그 자리를 굳히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K-TOP1차 세계대전이 의외로 길어지면서 다른 부족들과 관계를 굳이 악화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당시 평화를 갈구받는 상황을 인식하고 갈구하는 이들의 마음대로 평화 외교 노선을 받아들여줬다. 하지만 K-TOP의 워팀들은 이리저리 코어에 갇히지 않고 외곽으로의 진출을 꾀했고, 이럴때마다 타 부족과 충돌이 야기되면서 K-TOP의 오만한 태도가 드러나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춘추전국시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제국이 초전에 패배했던 3월 초순 이후로 비정할 수는 있다. K-TOP의 권위에 어느 누구도 도전하기가 어려워진 수준임이 증명된 때가 바로 그 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국이 큰 피해를 입고 전쟁을 치러야 되는 상황에서도 다른 부족들의 전쟁은 이미 발생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와중에 SAINT 부족원 1명이 한민족연합 소속의 부족원을 상대로 노블을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공격은 한민족연합의 동맹 엄친아로부터 지원을 받아 방어를 하게 되고, 오히려 엄친아한민족연합의 합공으로 해당 SAINT 부족원이 역으로 노블당할 위기에 처한다. SAINT는 즉각 외교적인 중재에 나섰다. 엄친아는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지만, 한민족연합은 전혀 외교 채널을 열지 않았고 결국에 그 SAINT 부족원을 노블하기에 이른다. 결국 분노한 SAINT 측은 한민족연합과 전쟁을 결의했다. 이 전쟁은 한민족연합이 겪은 온갖 고생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북서에서도 화약고가 터져버렸다. 앞서 서술했었던 MTW북서련의 악연이 결국 최초의 북서방면에서의 연합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전쟁은 FLAG라는 북서의 부족이 MTW와 부족원간에 충돌이 발생한 것에서 비롯됐다. FALG는 중재를 요청했지만 MTW는 부족원간 분쟁에 관여할 수 없다고 이를 거부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FALG북서련, 명장, KR공화국, DC, KOR 부족들이 08년 3월 6일자로 공동으로 MTW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MTW골드시티와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북서련 세력에 대항해 전쟁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북서련FALG와 공동전선을 펼쳤다고 알려진 다른 중소부족들의 전쟁 행동이 없었다는 점에 의문을 품은 MTW의 조사 결과 북서련FALG만이 실제 전쟁에 가담한 것이지, 나머지 중소부족들은 가담하지 않은 사실을 밝혀낸다. 실체를 밝혀낸 MTW는 공격 상대가 줄어들어 전력을 집중할 수 있는 이점을 얻었고 애시당초 전력으로도 우위에 있던 그들은 악연이었던 북서련과 덤으로 FALG까지 완전히 제압해 북서의 패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때 북서련 등의 생존자들이 HKK 측으로 도피성 가입하는 문제가 발생하여 후일 MTWHKK간의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렇게 3월 초중순부터 크고작은 전쟁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부족들은 내실을 다지는데도 열정을 기울였다. 부족원 충당과 타 부족과의 합병 등이 자주 일어났다.

SAINT제국K-TOP과 NAP(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한민족연합과 전쟁에 집중하면서도, 바위를 이용한 K-TOP으로부터의 천연 방어선을 갖고 남동에서 세력 확대를 꾀했다. 그리고 레베비RG를 철저히 소탕하려고 하면서 인근의 NFT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레베비 소탕은 SAINT의 집요함이 대단하게 발휘된 부분이다. 레베비는 부족장이 죽을 각오로 맞서 싸웠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어져 있었고, SAINT는 해체에 대비해 부족원 명단을 확보해 계속 추적할 의지는 불태우면서 한편으로는 레베비의 동맹인 베어즈를 사주해 동맹을 깨고 기습공격을 하도록 했다. 레베비 부족장은 마지막에 배신을 날린 베어즈 측을 저주하며 쓰러져갔다. 3월 28일 레베비는 해체되었지만 출신자들을 대상으로 SAINT는 계속 소탕을 펼쳐나갔다.

마비노기타임즈SAINT와 휴전 조약을 맺은 뒤에 부족장이 교체되어 sarada가 부족장에 오르면서 일대 변혁의 기회를 갖는다. 주변에 신화 부족을 흡수합병한 다음에 유력 부족과 마찬가지로 흡수 합병을 하는 방법으로 세력을 불려나간 것이다. 이때 부족 명칭도 부족타임즈로 바뀌면서 사실상 기존 커뮤니티와의 관계가 멀어졌다. 이런 과정을 겪은 커뮤니티 기반 부족은 사실 여럿이나 더 있는 편이다. 더욱이 SAINT와의 관계 개선에 매진하면서 외교적인 수완을 올렸다. K-TOP과 근접한 53대륙 등지에 근거지가 있는 점을 고려해 SAINT와 마찬가지로 NAP을 체결하고 저자세 외교를 펼쳤다. 이들은 4월에 중소부족과의 분쟁을 이용한 전쟁, 5월에는 EFA와의 전쟁을 통해 세력 확대를 무력을 통해 하는 방법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MTW도 밀집도 개념을 조기에 현실화시킨 다음에 북서련FLAG를 제압하고, 바로 이어서 북서련FALG 출신 유저들을 HKK가 받아들인 것으로 외교적 충돌이 발생하자 곧바로 전쟁에 돌입했다. 이때 HKK는 그동안 다져놓았던 북서의 기반을 모조리 상실하는 참패를 당한다. (이는 HKK시나브로가 혈맹을 체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의외로 추후의 북서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앞서 부족타임즈와는 달리 SAINT처럼 공격적인 확장을 즐기는 쪽이었다. 이는 북서 방면에서 가장 빨리 방위별 강자 부족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ROME에서 IRC 출신자로 구성된 FTF는 자측의 태사자1이라는 유저가 한민족연합과의 유저들과 충돌이 잦다는 이유로 한민족연합 측이 장거리 공격을 감행하면서부터 전쟁이 일어났다. ROME의 허무한 몰락과는 달리 이들은 장거리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을 뿐만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성장해나갔고, 나중에 4월에 엄친아 부족과 통합해 쌈닭 부족을 창설하였다. 이때 FTF도 그렇고 엄친아SAINT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엄친아가 아예 대규모 대(對) SAINT 동맹을 조직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점을 감안한다면 남동은 그래도 평화롭게 흘러간 편이다. K-TOP이라는 존재의 영향이 컸다.

이는 후일 3강이 되는 부족들에 대한 대략적인 모습이고, 이 다음부터는 비록 3강에 들지 못하였지만 춘추전국시대의 군웅할거로 새롭게 명망을 떨친 부족들의 내용이다.

한민족연합은 1페이지에 드는 강한 부족이었다. 주요 전쟁에 등장할 정도로 춘추전국시대 중반까지는 나름대로 명성을 지키며 지내왔다. 그렇지만 이 의미는 반대로 이 부족이 너무많은 적을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민족연합이나 고구려제국과 같은 신흥 외곽 부족들이 성장하였고 자연시dc, 은하제국 같은 중소 명문 부족들도 다수 존재하였다. 카타르시스(시나브로)가 해체되면서 생겨난 부족7080, 비광 등의 카타르시스 후예들도 세력을 다졌다. 이들도 1페이지 명문 부족에 밀리지 않게 침략과 흡수를 통한 확장 정책에 신경을 두었다.

케이탑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부족들이 확장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 바람에 1세계는 혼란으로 가득찬 세계가 되어 버렸다. 각 부족의 오피서들은 전쟁과 외교를 통하여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장악하려고 온갖 계략들을 짜냈으며, 동맹과 배신이 밥 먹듯이 바뀌기도 하였고, 하루에도 쟁쟁한 사건들이 줄을 이어 터졌다. 어떤 부족이든 한가롭게 영농한 시간이 없었다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하루 10분 플레이는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랭커들은 초치기를 익혔고 방어를 위해 잠을 끊어 잤으며, 오피서들은 허구연날 irc에 접속해 행정 업무를 도맡아야 했다.

이 시기에 부족전쟁 공식포럼이 기능불능이 되면서 게임갤러리는 온갖 떡밥들로 대호황을 누리게 된다. 시나브로의 흑막, 유비 성자라던지 세계를 조율하는 레벨리온이라던지 등은 한동안 겜갤의 대표적인 떡밥 아이콘이었다.

그러던 중 4월 26일에 발발한 고구려 전쟁은 5강 체제의 서막을 알렸다. 고구려제국 간부가 쌈닭 간부에게 보낸 무개념 메일 덕에 발발한 이 전쟁은 장기전이 될 듯 했으나 MTW의 갑작스럼 참전으로 고구려제국,대고구려국의 북서 거점이 3일만에 모조리 초토화되며 쌈닭MTW를 강력한 세력으로 만들어주었다. 이후 MTWHKK공격과 대 한민족연합 전쟁으로 5강체제는 확고해진다. 이 5강체제는 7월 초까지 지속되는데 이 5강체제가 부족전쟁의 힘의 균형을 유지해주었다.

참고로 이 5강 체제는 춘추전국시대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전의 시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4월까지만 해도 1페이지 부족이라고 불리는 20위권 내의 부족들은 부족전쟁의 정세를 어느정도 좌우할 수는 있었지만,[6] 5강체제가 성립된 5월부터는 소위 5강이라고 불려지는 5개의 부족(케이탑,세인트,쌈닭,MTW,부족타임즈)만이 1세계의 정세를 좌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5강을 제외한 다른 부족은 5강 중 최소 1부족과 친밀하지 않은 이상 잡아먹힐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서로 먹고 먹히는 싸움을 거치면서 고구려제국, 한민족연합, 자연시dc, 은하제국, 부족7080은 점차 확연해지는 강자들에 의해 제압되어 양분이 되었다. 특히 7월 경에 있었던 곰탕 끓여먹기는 강자들에게 엄청난 양분을 제공해주었다. 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강자들은 7월까지 세력을 다진 뒤에, 목표했던 것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바로 케이탑을 권좌에 끌어 내리는 일이었다!

3강 체제의 성립과 급변하는 정세

불사조 (1세계)

불사조.jpg




7월에 들어서면서 1세계의 정세도 눈에 띄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했던 많은 부족들이 강대한 세력에 흡수되거나 파괴당했다. 강대한 세력의 영역은 코어를 둘러싼 외곽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으며, 점수대나 랭커 등의 전투력에서나 케이탑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자체가 케이탑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세력 확장이 시발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춘추전국시대의 목적은 이미 달성 된 셈. 이 시기까지 케이탑은 어떤 대응도 내놓지도, 하지도 않았다.(...)[7]

케이탑은 강자의 딜레마에 갇힌 것이었다. 최강자의 지위는 게임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행보 하나하나가 모든 이들의 주목과 비난을 사게 마련이었다. 케이탑은 그런 상황을 염려한 것인지 WW1 이후로 정규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그래도 케이탑도 먹고 살아야 되니, 되도록이면 약자를 상대로 케이탑 워팀이 1대1 룰[8]을 들이대면서 무자비하게 확장을 시도하게 되었다. 북서와 남동은 위협적인 상대가 넘쳐났으니 남서의 전설 부족, 북동의 여러 부족들을 상대로 케이탑은 대운하 작업(...)에 착수했다. 전설의 경우에는 부족타임즈가 남서 대부분을 차지한 상태에서 남서 외곽에서 밀집도를 높이며 세력을 다지던 중에 그대로 케이탑의 먹이로 전락해 버렸다. 이후 비참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오피서나 랭커나 모두 처절하게 싸웠다고.(...) 하지만 정작 유력 부족과의 분쟁은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전쟁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7월에서 8월로 사이에 케이탑은 평화를 갈구받는 처지에서 갈구하는 처지로 변한다. 바로 이 시기에 3강이라 불리는 부족들이 등장한 것이다. 세인트는 남동에서의 전쟁을 통하여 명실상부한 지역 패자로 떠올랐으며, 또 케이탑과 전쟁을 치르더라도 맞상대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MTW부족타임즈도 세력이나 전투력에서 케이탑을 부분적으로나마 상대가 가능해졌다. 지역적으로도 3강케이탑을 포위하고 있었다.

3강 체제는 7월 17일 남동의 세인트쌈닭이 합병하여 불사조로 거듭나면서 굳어졌다.[9] 불사조, 부족타임즈, MTW라는 3강은 이제 케이탑을 상대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됐다. 3강 체제가 등장하고 베어즈 전쟁이 확전되면서 케이탑3강의 위협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외교관 리셋미네는 부족타임즈 등을 상대로 케이탑에 대한 불가침 조약을 거듭 확인하고 다녔다. 하지만 부족전쟁에서 배신 아니면 뭘로 먹고 살텐가.(...) 당연히 휴지조각보다 못한 약속이었다. 케이탑의 운영진은 외교적인 수완으로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였지만, 이미 상황은 그러기에는 무리였다.

케이탑은 무력에 있어서는 아직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전력누수는 각오해야 되는 문제였다. 대운하 작업도 일부 지역에 한정된 문제였으며 대다수의 코어 유저들은 루즈해지는 게임 플레이에 질려서 영농질을 하거나 현게를 타버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코어 외곽에서 들여온 신입들은 케이탑의 위세만 믿고 여러 부족들에게 어그로를 끌고 다님으로서 문제만 더욱 키웠다. 리셋미네의 무능도 한 몫했다. 그녀는 외교적 수단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란 너무 낙관적인 전망만 가지고 있었다. 여러 인물들의 전쟁 경고에 대해서 공포를 막연히 느꼈고, 이에 대한 대비도 너무 늦었다. (8월 초순에 전쟁 준비에 들어갔지만 며칠 뒤에 WW2가 났다. 어쩔....)

3강은 오래 전부터 친목을 다져왔다. 불사조, 부족타임즈, MTW 모두 케이탑에 대한 결전을 일찍이 준비하고 있었던 것. 베어즈 전쟁은 아예 3강이 추후 케이탑의 원군이라 예상 되는 베어즈를 미리 진압하기 위한 예방 전쟁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정치적 계산은 국K-1을 능가할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케이탑에게는 계속 평화 공세를 펼쳤다. 물론 이쯤되면 케이탑도 전쟁을 위한 노골적인 딴지 걸기를 자주 일으켰고, 이때마다 전쟁 기운이 물씬 피어올랐다.

게임갤러리를 비롯하여 많은 유저들과 현자들이 8월에 세계대전이 있으리라 추측하고, 온갖 떡밥들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3강의 언플은 반(反) 케이탑의 기치를 드높이거나 3강의 정당성 강화에 이용되었다.[10] 물론 3강에 대항하는 언플도 만만치 않아, 케이탑을 지지할 부족들의 리스트가 언급되곤 하였다. 덕택에 3강 측에서는 미리 준비한 계획과 연동시켜서 케이탑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더욱 가지치기 하는데 주력했다고.(...) 게다가 게임갤러리3강의 지도자들이 빅파이도 뿌려대면서 인기를 하늘을 찔러댔다.(...) 이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소양이다.

3강은 공격 계획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고, 뒤늦게 케이탑도 부랴부랴 공격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한 외교적 물밑 접촉은 가장 급박하게 돌아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탑은 기존의 착각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운명을 역전시키는 8월로 넘어갔다.

베어즈 전쟁

Bears (1세계)

사실 베어즈 전쟁은 1세계 춘추전국시대에 일어난 전쟁으로, 세인트베어즈레베비 진압 이후의 분쟁으로 인하여 발발한 것이 원인이다. 세인트 부족은 자신들에게 대항했던 부족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는데[11] 레베비는 가장 최초로 그 대상이 되었다. 세인트는 자신의 동맹이자, 레베비와고도 깊은 외교 관계를 가졌던 베어즈를 회유하여 패배 직전의 레베비를 압박하게끔 만들었다.[12] 이 ~배신의 정석~ 앞에 레베비는 치를 떨면서 부족을 해체한다. 허나 세인트는 이를 좌시하지 않았고, 그 이전에 미리 부족원 명단을 만들어 놓아 옛 부족원들을 추격해 섬멸한다.

이 과정에서 레베비 부족장의 마을을 두고 세인트베어즈는 협의 끝에, 원한이 깊은 세인트 측에서 이 마을을 점유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역시 배신의 정석 대로 베어즈 측에서 이 마을을 먹어버리고 만다. [13] 이후 이 사건을 기점으로 양 측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으며 분쟁마다 대립각을 세웠다. 서로 원한이 깊어졌는데, 4월 말(혹은 5월 초)에 베어즈 내에서 의문의 부족 해체 사건이 터지면서 내부 혼란이 심각화된 상황을 노리고 세인트가 기습적인 선전포고를 가하였다.[14] 이후 양 측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고[15], 전체적으론 세인트가 우세한 상황을 이끌며 남동-남서 접경지 사이로 베어즈의 세력권을 몰아낸다.

이 전쟁을 제어하기 위해 부족타임즈는 7월 즈음에 베어즈세인트 간의 휴전을 중재하게 된다. 역시 외교로 짱먹는 부족 부족타임즈....[16] 실은 부족타임즈는 6월 13일~16일에 있었던 바위 부족과의 전쟁을 세인트의 중재 요청에 따라 포기했던 적이 있어서 그 반대로 세인트에게 베어즈와의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카드가 있었다. 베어즈부족타임즈가 전쟁을 개시했던 EFA 부족을 중도에 무단으로 흡수한 결례가 있어서 부족타임즈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 베어즈는 전쟁에 지쳤었다.

양측은 중재 요청에 응하여 휴전 협상에 나섰다. 협상 동안 일체의 공격이 금지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양 측은 조건을 어기고 교전에 나섰다. 베어즈 측이 먼저 마을 공격과 노블 시도를 펼쳤고, 이후의 해결 노력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만 이 것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조금 있어 애매하게 보이는 사안이다.(...) 어쨌든 협상은 결렬되고 부족타임즈는 무한한 쪽팔림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부족타임즈는 7월 10일 베어즈 부족에 선전포고 했다.(...) 음모론은 부족타임즈가 회담이 파토날 것을 알고 일부러 판을 짜놓고 기다린 것이다라고 하는데[17] 사실은 아는 것은 1세계 3강 핵심 멤버들 밖에 없다.(...)

더군다나 베어즈는 거대 부족들인 5강과의 관계가 험악해지고 있는 동안에도 일부 무개념 부족원들이 몇몇 부족들을 건드렸다.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부족원에 대한 통제력이 약했던 것이 원인. 이 일로 말미암아 밀집도의 대명사 MTW도 쌈싸먹을 수준의 무지막지한 밀집도를 자랑하던 남동 변경지대의 룩폴리노미얼, 케이탑의 공세를 끝끝내 버텨낸 제국의 잔당 일부가 만든 기사단과도 이 무렵에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이 두 부족은 나름 1페이지권에 들어가던 내실있는 부족이었기에 이 곳에서의 충돌도 그다지 베어즈에게 좋지는 않았다.

거기에다가 부족타임즈의 뒤를 이어서 MTW도 7월 12일 베어즈와의 동맹을 철회하고 공격에 나섰다.(MTW룩폴리노미얼 혈맹관계, 겜갤 유출, 현재 삭제) 거기에 얼마 후 쌈닭세인트와 합병하면서 자연스럽게 쌈닭부족원들도 베어즈를 공격하게 된다. 참고로 MTW는 본래 전쟁에 있어서 명분을 매우 중시하던 부족이었으나 베어즈를 공격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기에 일단 표면적으로는 동맹 파기만 선언했다. 그러나 동맹 파기와 함께 대규모 병력을 보내 베어즈를 공격했다. 이런 단순히 동맹만 파기한 비 선전포고상태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MTW는 정식 전쟁 선언한 타임즈보다 더 많은 마을을 먹었다. 공세의 수위가 엄청났던 것. 당연히 게임 갤러리에서는 명분은 어디다 팔아먹었냐며 죽어라 욕을 얻어먹었다. 전쟁에서 명분을 중시하던 MTW가 이런 무지막지한 태도를 보일 때 쯤 되자 겜갤러들은 깨닫게 되었다. 바로 케이탑과의 일전을 대비해 3강이 대놓고 예방 전쟁을 펼친 거라는 것을 말이다. 베어즈케이탑과 친밀했고 3강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양분(도시락)이었다.

베어즈 부족은 3강의 공세에 직면하자,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로는 케이탑에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케이탑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노블까지 단행했다. 이쯤되면 케이탑은 무뇌집단으로 비춰질 지도 모르겠다. 8월에 전쟁 나고서야 케이탑베어즈는 뒤늦게 동맹을 체결하게 된다. 이때 베어즈 부족장 블러드윈드(혈풍)의 호소문은 가히 명문. 간지폭풍을 일으키면서 베어즈 부족원들이 패퇴의 위기에서 다시금 재기할 힘을 불어넣어 줬다. 블윈이 조기에 리타이어 당한 것이 안타깝다. 이후 베어즈는 남동과 남서 접경지에서 아웃 당하고 남서 외곽으로 대규모 이주를 단행한다.

여담으로 RG는 타임즈가 선전포고 하기 며칠 전에 베어즈가 합병했는데, 이후 타임즈와 MTW의 공격에 직면하면서 험난한 싸움을 펼치게 된다. 그들이 나중에 사상 최강의 워팀 중 하나로 칭송받는 북극곰이 된다.(...)

WW2 ~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1세계의 최종 전쟁이 사실상 WW2가 유일하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쟁들도 이것의 파생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08년 8월 4일 오전 08시, 3강(불사조, 부족타임즈, MTW)은(는) 케이탑에 기습선전포고[18] 하고 동시에 8시땡 공격을 펼쳤다. 룰에 의하여 야간방어보너스가 사라지는 오전 8시를 노리고 온 공격이니, 기습의 효과는 백배천배(...) 외곽의 케이탑 유저들은 대처고 뭐고 싹 다 털려버렸다. 수 일 동안 MTW불사조는 화려한 전적을 내면서 진군했다. 타임즈는 몸빵용이라는 자체 판단 대로 한동안 케이탑에게 조금은 밀렸다. 이 기습전은 WW1에 있었던 케이탑의 전격전을 뛰어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케이탑은 자신이 밀어버린 제국보다 더 무능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셋미네를 비롯한 몇 안되는 케이탑의 무능 겸 무뇌 수뇌부는 충격에 빠졌으며, 곧 3강의 계략에 의해 무장중립을 선언한 프리메이슨 부족이 창설되면서 그 방면으로 다수의 도망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3강게임갤러리는 외곽은 그렇다 쳐도 코어에는 1차대전 참여자들 같은 개념닉들이 많이 분포한다는 점때문에 완강한 저항을 예상하였지만,(이 코어에 분포하는 자들을 코어의 괴수라고 불렀다.) 그건 노스페라투 같은 54대륙이나 극코어 방면의 케이탑 랭커들이 겨우 발휘했을 정도며 케이탑 대다수 부족원들은 학살에 가까운 공격을 당했다. 케이탑은 당연히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유력 부족에 SOS를 보냈다. 먼저 응답한 것은 그동안 케이탑의 전용도시락이었던 전설.

하지만 전설은 8월 5일, 공식으로 케이탑에 선전포고하고 자신들의 억압받은 세월을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가졌다.(....)

그래도 MTW케이탑과 관계가 깊은 홍우예향담을 저지하고자 외교 관계를 해지하고 공격을 한 것 때문에, 홍우예향담든 동일 케이탑을 지지하면서 MTW에 선전포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 8월 6일 홍우예향담은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던 동맹 타임즈에게 배신을 당했다.(...) 사실 타임즈와 MTW의 혈맹이었던 터라 당연한 수순. 여기에 결정타로 8월 8일 판데모니엄 연방은 아예 케이탑과 그 동맹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3강에 끼어들어 한 밑천 챙기자고 선전포고문에 남겼다.(...) 그래도 당시 판데모니엄 부족장이 남겼던 선전포고문은 명문이니 오해하지 말자. 이후에도 HKK케이탑과의 관계를 배신하고 8월 22일에 선전포고 했다.그 이전에 자신들을 쥐어패던 MTW와 전쟁이 종료된 것으로 보아서 사주에 의한 전쟁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다.(...) 8월 11일에는 북서의 아스트랄 부족은 타임즈의 횡포에 저항하고자 타임즈에게 선전포고 했다지만, 역시 케이탑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대규모 세계대전으로 가면서 역대 최대의 참전 인원을 자랑하게 된다. 수천 명이나 되는데다가 전쟁도 전 방위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적으로 케이탑 계열 부족들은 3강에 의해 패배당했다. 케이탑이라는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리기 위해 반년 가까이 힘을 비축한 자들에게 케이탑은 너무나도 무기력했던 것이다. 그들은 곧 코어의 중심지이자, 조율의 성지인 좌표 500|500 지점의 마을을 잃어버리고 극코어에서도 물러날 위기에 처한다. 케이탑 자체는 남서 외곽과 54대륙 인근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고 권좌에서 끌어내려졌다. 물론 이렇게 전쟁이 끝나지는 않았다. 케이탑의 유능한 랭커 '푸른노을'[19]의 주도로 54의 항전과 남서에서의 반격을 기획한다. 베어즈와 남서의 유력 외곽 부족들, 케이탑 잔존 세력을 중심으로 남서련이 발족되어 항전에 나섰다. 남서련 발족 날짜가 8월 28일이었으니, 전쟁 난지 20여일 만에 중심지 싹 다 밀리고 외곽으로 밀려나 항전하는 꼴이다.(...)

3강은 이에 역시 대항하여 '소나무향기'에 의한 베어즈 내 반란을 지원하여 천명 부족을 독립하게끔 만들었다. 천명은 이후 베어즈에 대항해 오랜 전쟁을 겪는다.

9월이 되자, 타임즈와 MTW는 합병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9월 4일에 부족전쟁의 어드민들은 한 부족에 몰리는 유저들이 너무 많은 것을 염려하여 한 부족에 500명의 유저만 가입가능하도록 룰을 바꾸는 '500인 제한령'을 선포했다. 남서련은 1000명이나 되는 까닭에 수 갈래로 연방 부족 체제가 되었고, 판데모니엄도 그랬다. 타임즈와 MTW는 각각 동일 행정 조직을 가지면서 하얀달, 검은달 이원 체제로 바꿨다. 9월 체제의 3강불사조, 달, 판데모니엄으로 개편 된다.

남서련의 등장과 '푸른노을'을 비롯한 케이탑 인원의 역습에 의하여 전쟁은 장기화 된다. 10월 혹은 11월부터는 3강 내의 분열이 시작됐다. 불사조판데모니엄은 외교 관계를 해지하고 사실상의 전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판데모니엄는 덩치에 비해 무능했고 불사조는 반대로 유능했던 까닭에 전쟁은 불사조의 우세 속에서 진행되었다. 2009년 중엽이 되어서야 판데모니엄의 해체까지 불사조 워팀은 승승장구했다.


WW2가 가지는 의의는 바로 케이탑이 권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대신에 3강이 그 자리를 나눠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3강도 중도에 개편되지만 전체적으로 그들의 권위는 수 개월 동안 유지되었다. 그들은 반 년 가까이 절대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합종과 연횡을 반복했고 비밀 채널을 통하여 케이탑에 대한 연합전선을 거의 완벽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 사실을 케이탑이 감지하지 못하도록 하면서도 힘을 모은 것은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1세계의 춘추전국시대에서 혼란스럽고 무질서였던 공간은 이제 강력한 거대 조직들의 힘겨루기라는 장면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넷 상에서 사람들은 강제성이 없는 조직에 헌신하면서 승리와 영광을 위해 8월의 역전을 기다려왔다. 어떻게보면 잉여로운 자들의 한심한 소모일지 모르겠으나, 바츠해방전쟁보다 더 위력적인 사이버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절대권력을 위한 무한 투쟁. 부족전쟁 1세계의 부족들은 부족 간의 질서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다. 온갖 음모술수와 영웅적인 전투가 있어왔다. 특히 케이탑이 화려하게 제국을 제압하며 절대권력이 가까웠졌으나, 이후의 실수로 인하여 3강의 의해 몰락하는 과정은 대하서사에 가깝다. 3강의 인원들도 정말로 대단하다. 오죽하면 부족 오피서는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채용해도 아깝지 않다는 평을 받겠는가.(....) 현재까지도 3강의 비밀스러운 계획들이나 음모들은 흑막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자체를 조율한 자들이다.(...)

하지만 3강케이탑을 몰아내고 코어에서 권좌에 올랐어도 지위 자체는 오히려 불안스러웠다. 케이탑은 패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항전자와 지지세력들이 남서에 항전을 위한 연대를 했고, 북서에서도 최강의 북극곰 워팀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3강을 위협하고 있었다. 달 부족은 이런 상황에 남북으로 협공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북방의 검은달은 위력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남방의 하얀달은 08년 말에는 핵심 밀집지역이던 53대륙을 상실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말았다. 불사조는 남동 외곽에서 세력을 키운 개마무사단 부족과의 전쟁에 돌입하면서 다수의 적을 맞이하게 됐다. 남서련과 그들의 세력은 생각보다 몹시 강력했기 때문에, 2009년 초의 세계멸망까지 전쟁은 계속 된다.

08년 9월부터 09년 2월까지의 5개월은 길고 지루한 공방전이었다. 3강케이탑 잔존 및 지지세력의 전쟁은 몹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어느 측에 확실히 우세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많은 유저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5개월 사이에 열린 2세계는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케이탑 자체가 거진 붕괴된 상황에서, '푸른노을'에 의해 제3세력인 단군[20]이 창설되자 사실상 케이탑의 명줄도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8월 후반부터 3강의 멤버들의 케이탑 몰락으로 자신의 원을 풀고(?) 현게를 타던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이것은 전력누수로 이어졌다. 전력에 구멍이 생긴 달과 불사조는 이곳저곳에서 얻어터졌고 수습하기 위하여 랭커들과 오피서들은 더욱 노예질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겪었다. 피로 누적은 자연적으로 그들마저 현게를 타게끔 만들었고, 상황은 악순환이 됐다.(...) 물론 건강 걱정 안하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그리고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세계의 끝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시나브로의 부활

시나브로

시나브로.png



카타르시스의 멸망 이후로 게임 갤러리의 떡밥들은 식어버렸다. 유비 성자의 경우에는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끝내 겜갤러에 의해 현게포를 맞아버렸고, 조율신 레벨리온은 WW1에 이미 케이탑에 의해 현게포를 맞음으로서 사라져서 게임 갤러리는 시나의 유지를 잇는 자가 사라진 것이다.[21] '몽키스핀'에 의한 재건 시도가 있었지만 그가 축출당한 후에 그의 부족은 파멸하고 말았으니 어느 누구도 시나가 다시 이후의 세계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캐쉬떡칠'에 의한 시나브로 재건은 예상 밖으로 개념랭커들의 유입이 진행되면서 활발하게 진행된다. '김럭키'를 위시한 신진 세력들은 오히려 '캐쉬떡칠'의 막무가내식 운영 등을 지적하면서 그를 몰아내고, '김럭키'를 부족장으로 하는 지도부를 세운다. 리턴 부족과의 합병을 시도하면서 시나브로는 구 시나브로와는 다른 이미지로 1세계에 데뷔를 한다. 과거의 구 시나브로가 머릿수가 많지만 지휘통제나 전투력이 제로에 가까웠다면, 신 시나브로는 소수이지만 지휘통제와 전투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리턴과의 합병 결렬 이후 전쟁에서 신 시나브로는 승리를 거둘 뻔 했으나, 북삼련(아스트랄+홍우예향담+북극곰)의 압력에 의해 전쟁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럭키'는 부족장에서 물러나고, 대신에 '정만웨'가 직위에 오른다. 신 시나브로의 황금기를 이끈 사람은 바로 '정만웨'다. 그는 '김럭키'가 북삼련의 압력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달 부족에 대한 공격에 합의한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당시에 북방의 강자인 북삼련과의 전쟁에 나섰다. 외곽 지역에서 신 시나브로는 고립되어 있었음에도 굉장히 선전하면서 북극곰 정예 워팀의 공격까지 방어하는 기력을 토해낸다.[22] 하지만 신 시나브로의 뉴비들은 고행의 길이나 마찬가지. 이 까닭에 '정만웨'는 자신에게 비협조적이던 달 부족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당히 고생했다.

하지만 '정만웨'가 계정이 밴 당하고 또 그의 부족을 달에 귀속시키려던 시도까지 실패하자 결국 신 시나브로 자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 이후 북삼련은 이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여담이지만 '정만웨'를 비롯한 이 시기의 신 시나브로 멤버들은 이후 4세계로 옮겨가 새로운 전설을 썼다고 한다.(...) 그 시점이 되었을 무렵엔 시나브로는 아예 종교가 되었고 그들은 광신도가 됐다. '정만웨'의 육성 지도문이 있으며, 이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정도. 4세계의 시나의 위세는 한때 대단하기도 하였다.

몰락의 전조들

단군 (1세계)


3강에 의한 새로운 지배체제가 등극했다고 하지만 기실 그들이 지닌 통제력은 지난 케이탑에 의한 억압된 세계보다는 많이 약화되어 있었다. 3강이 8월의 역전에서 보인 파괴력이 무시무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세력을 가진 신 외곽 세력들은 일찌감치 3강에 적대하고 있었다.

남동에서 외곽의 일개 대륙을 완벽히 점거하던 룩폴리노미얼과 나름 세가 강하던 유린이 합병한 개마무사단은 본래는 불사조와 친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양 측의 분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달은 끝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쪽은 나름 3강과 모두 외교 관계를 수립해 있었고, 8월의 WW2에서도 3강 측에 협조하며 전쟁에 참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쪽 방면의 전쟁은 추후 다시 설명하겠지만 부족전쟁의 서비스 회사인 인노게임스의 어드민 관리 문제를 노출시키게 되었다. 일종의 썰에 불과하지만 양 측은 어드민으로 전쟁을 치렀다.

한편 북동은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3강에 진입하는데 성공한 판데모니엄불사조와 이전부터 대립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케이탑 선전포고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지만, 역시 양 측의 분쟁 수위는 날로 증가하여 도저히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 결국 불사조판데모니엄과 외교 관계를 해지하고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 돌입했다. 남동과 북동의 대결로서, 아마 이후 전개되는 부족전쟁 전쟁 스타일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방위별 전쟁으로서 양 측은 투사될 수 있는 전력을 여기에 집중했다. 헌데 이 과정에서 판데모니엄의 조직력은 몹시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통제력의 저하로 인하여 08년 12월 8일에는 평등한 세상 부족이 반란을 일으키고 줄넘기 부족이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이전부터 각 연방 부족 간 통일성은 해체되어 있었는데, 예를 들어 판데모니엄 주축 세력이었던 판데-아가레스 15대륙군[23] 유저 대부분이 적대 부족인 홍우예향담으로 이적한 것부터알 수 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외교 관계를 가졌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본 부족의 통제에 벗어나 있기도 하였다. 무스펠하임의 경우에는 완전히 독립 부족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불사조와의 전쟁은 막대한 물량 투입에도 불구하고 판데모니엄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래도 규모가 규모인지라 물량을 바탕으로 하여 불사조의 공격을 끊임없이 방어 하였다.

북서도 많이 시끄러웠다. 이곳은 구 MTW, 당시에는 검은달이 통제하던 곳이었지만 외곽으로까지 힘을 뻗칠 규모는 아니었다. 때문에 이곳에는 외곽 명문이 탄생했다. 아스트랄, 홍우예향담, KR공화국과 같은 부족들부터 북극곰까지 세력 분포도는 다양했다. 그렇지만 달 부족에서 이 지역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구 타임즈는 MTW와는 따로 북서 통제를 위한 계략을 실행했었다. 앞서 4월에 타이탄 부족을 흡수하여 북서 거점을 확보한 그들은 위협적인 KR공화국을 파멸시키기 위해 여러 부족과 연합하여 KR공화국을 공격했다. KR공화국은 패배했고, 사실상 타임즈의 식민 부족으로 전락하게 됐다. KR공화국은 전쟁 이후 리턴이라 개칭하고 친 타임즈 노선에 따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KR공화국에 저항하며 타임즈가 친선한 아스트랄과 몇 북서 부족들은 타임즈과 불안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8월에 가면서 붉어졌고 무엇보다도 케이탑이 아스트랄과 홍우예향담에 지속적으로 추파를 던진데 이어서 MTW홍우예향담을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외교 관계를 해지하는 것으로 북서 변방은 일제히 친 케이탑 노선으로 전환된다. 여기에 타임즈가 홍우예향담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MTW의 편을 들었다. 이 시점부터는 아스트랄-홍우예향담-북극곰이라는 북삼련이 탄생했다. 그들은 검은 달과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헌데 문제는 남서가 심각했다. 애초에 타임즈 남방은 영농과 합병으로 세력을 키운 곳이었고 이 때문에 그들 내부는 물론 3강 지휘부에서도 전투력 관련 문제가 시시때때로 언급되곤 했었다. 그런데다가 타임즈는 전설이 세력을 불려가던 시절부터 이미 남서 방면의 확장이 소극적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때문에 외곽 부족으로 엔젤하이로, 전설 등의 다양한 부족들이 난립해 있었다. 이들은 타임즈와 친선 관계를 가지고 각자 대립했다. 타임즈는 이를 방기했고, 간혹 위기 상황에 개입하여 분쟁을 중재하거나 강제적으로 진화시키려고 하였다. 남서는 8월 이전까지 타임즈에 의한 지배를 인정하던 분위기였고, 타임즈의 유능한 오피서들도 이를 위해서 여기저기 업무를 맡았었다. 엔젤하이로의 경우에는 북서에서의 패퇴 이후로 타임즈가 나름 신경 써서 배려를 해주기까지 했다.[24] 그러나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전설 부족이 남서 외곽에서 패권을 잡아가는 모습에는 단호한 의지로 개입 시도를 하기도 했었다. 타임즈는 8월까지는 남서 부족들을 외교적으로 통제하는데는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8월의 대전쟁에서 타임즈의 통제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엔젤하이로와 윈터러는 이 과정에서 타임즈를 배신하여 친 케이탑 노선에 가담해버렸다. 다행히 전설케이탑에 선전포고하면서 타임즈와 적극적으로 연대하게 되었지만, 전설은 이 과정에서 타임즈 남방의 전력이 몹시 빈약하다는 사실을 간파해버렸다. 타임즈 남방은 WW2 초기에도 케이탑에 고전했고, 케이탑의 아카데미인 K2를 빠르게 제압하지도 못하였다. 오히려 전설보다 전투력이 떨어졌다. 일설에 의하면 양 측은 협의 하에 각 작전 목표를 수립하고 공동 작전을 펼친 적이 있었는데 전설 측은 거의 대다수의 목표를 노블한데 비해 타임즈는 반도 못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다가 케이탑베어즈의 패잔병들이 8월 말에 남서련을 발족하고 남서 외곽에서 세력을 다시 다지게 되자, 이것을 제압하고자 무리하게 싸움을 펼쳤다. 이때부터 하얀달(타임즈에서 MTW와의 합병 이후 이름을 개칭.)의 남방 세력 괴멸이 시작되었다.

타임즈의 변경들은 세력이 약해 빠르게 근거지를 확보한 케이탑 세력들에게 제압당했다. 타임즈 변경 유저들은 일부가 항전했지만 다른 일부는 케이탑 세력에게 항복하고, 이후 협조하기까지도 했다. 이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하얀달 남방의 중심 근거지인 53대륙 등으로부터 대대적인 공세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여기에 전설과의 분쟁까지 겹치기 시작,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08년 말엽에는 하얀달의 실책과 함께 53대륙 근처까지 침탈당하고 남방 근거지 전체가 공략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변방에서 있었던 부족원 항복 및 배신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심지어는 핵심 오피서 내에서도 진즉에 케이탑 측으로 전향해 협조한 이들도 있었다. 흠좀무. 무엇보다도 08년 말부터는 달은 1년 내내 육성했던 오피서들이 대거 현게를 탔다. 셋 이상의 정예 오피서가 1달 사이에 현게포를 맞았다. 이후 오피서 출혈은 지속됐다. 여기에 관료제의 고질적인 병폐들도 나타나고 만성적인 인력 부족까지 심화되면서 타임즈 이래로 내려오던 정교한 관료제 시스템은 정말 붕괴되어갔다.

하얀달이 맥을 못 추리는 상태에서 케이탑 세력들은 두 차례의 이합집산을 통해 구 타임즈를 구축하고 강력한 지방 세력을 형성하였다. 케이탑의 사실상 지도자 ‘푸른노을’과 엔젤하이로의 부족장의 연대로 탄생한 남서련은 거의 모든 외곽 부족들이 남서련에 가담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문제는 엔젤하이로의 부족장[25][26] 이나 외곽 오피서들이 워낙에 실력이 부족했던지라, 세력을 숫자로 채우려고 했고 거의 모든 외곽을 남서련에 가담시켰다. 케이탑은 이 사실을 싫어했다고 한다. 더욱이 남서련의 정체성도 모호하여 케이탑 세력의 연합이라는 게 맞다고 봐야 된다. 북극곰이나 북삼련 등이 가담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푸른노을’은 남서련에서 여러 인재들을 발견했고, 다수를 포섭하는데 성공하였다. 애시 당초 ‘푸른노을’에게 남서련은 먹다 버릴 양분에 불과했던 것. 하얀달만큼 저열한 남서련 다수에게 기대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다가 남서련의 과도한 확장으로 남서에서의 도시락이 줄어들었다. ‘푸른노을’은 또 다시 세력을 창설하여, 제3세력으로 등장하고자 한다. 이미 위와 같은 문제로 08년 11월에 남서련의 SWU는 레퀴엠으로 개칭하고 탈퇴했었다. ‘푸른노을’은 11월 30일에 케이탑, 베어즈, 매의 눈, BWSU를 데리고 남서련을 탈퇴해 전설과 함께 단군을 설립한다. 이와 함께 북극곰남서련을 탈퇴(북극곰단군과는 동맹 노선만을 유지하면서 북서 방위의 소수정예 명문 부족으로서의 독자 노선을 걷는다. 단군판데모니엄 연방과 우호적이었지만, 북극곰은 혈맹 홍우예향담과 함께 판데모니엄을 깐다)했다. 이후로 남서는 3개 세력을 분할되었다. 근거를 다수 상실하여 별 영향을 가질 수 없는 하얀달과 다수의 인원을 보유한 남서련(일련의 탈퇴 사건 및 통제력 약화를 겪으면서 아미쿠스로 개칭하고 통제력을 강화했다.)과 정예 중에 정예로 거듭한 단군이었다. 여기에 모두에 적대하는 레퀴엠도 끼어들었다. 어쨌든 이들은 서로 대립하고 연합하면서 남서의 분열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남서련-아미쿠스는 워낙 실력들이 열등했고 통제력도 약해 이후로도 분리독립이 발생하였다.

이 상황은 08년 12월까지 남서가 사실상 케이탑 세력에 의해 빼앗기는 과정이었으며, 달은 어떠한 반전도 행하지 못하였다. 불사조는 이 사태에 개입해야 되었지만 달-불사조 경계선의 등장과 남서-남동 방면에 남서련단군 세력을 커버하는 다른 친 케이탑 계열의 부족이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는 터라 진출하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불사조는 북동과 남동 외곽에서 각각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08년 8월의 반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쟁은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년 가까이의 3강은 다시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푸른노을’은 유능했으며, 그가 이끄는 단군은 달과 불사조 모두를 괴롭혔다. 그렇지만 달과 불사조는 그의 유화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엘리전을 각오하고 싸웠다. 3강도 나름의 굴레에 씌인 것이었다. 상식적인 부족전쟁 오피서라면 이쯤에서 전쟁을 멈추고 주변의 위기를 수습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귀신 들린 마냥 싸웠다.[27]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세계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음에도.

세계의 끝

부족전쟁에서 절대 있어서는 말아야 하는, 아니 모든 게임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 중에 아마도 관리자가 폭주하는 사태일 것이다. 관리자는 절대적인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게임의 밸런스를 지키고 흥행을 유도해야 되겠지만, 불행하게도 부족전쟁 한국서버 어드민들은 그러하지를 못했다. 어드민들은 특정 부족을 밀어주거나 부당한 운영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금전 관련으로 문제도 일으켰다. 여러 문제들로 인해 축출된 어드민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어만 갔다. 인노게임스에서 파견한 어드민 총괄 담당자인 ‘코알라’[28]는 몹시 무능하여 문제를 방치하거나 아님 직접 악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코알라’는 부족전쟁 한국서버의 흑역사이자 대재앙이라 할 수 있겠다.

어드민들 자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들이 부족전쟁 플레이어라는 사실이다. 특정 부족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부족전쟁 1서버에서는 누가 어느 부족에 플레이하는 어드민이라는 소문이 심심하면 떠돌아다녔다. 초기에는 어드민들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플레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의 금기가 깨지게 된다. 어드민들은 어드민툴을 이용하여 모든 유저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었으며, 서버를 조작할 수도 있었다.[29] 당연하게도 어드민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적대적 부족의 정보를 캐내거나 정보를 조작하였다. 다행히도 비밀번호는 알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입증되지 않은 사례다. 그래도 혐의가 의심되는 다른 건수가 있는데, 바로 어드민이 규정을 어긴 플레이어를 처벌하는 권한을 과도하게 남용하는 행위였다. 이것은 어드민의 처벌 규정 자체가 애매모호한 탓도 있었고, 이 때문에 처벌 규정과 밴 수위를 두고 지금까지도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긴 하다. 더욱이 플레이어들 스스로가 규정을 지키지 않고 온갖 편법을 이용하여 어드민들의 심기를 건들인 탓도 있다. [30] 그러나 불사조-개마무사단 전선은 필요 이상의 밴이 남발하였으며(물론 실제 양 측이 시팅 계정 등의 문제로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많던지 등의 이유가 있긴 하다.) 이 결과로 양 측의 주요 전선은 회광으로 넘쳐났다. 일설에서는 불사조개마무사단 양측에 어드민이 있다고 하며, 양 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어드민은 직접 개입이라 의심되는 행위들을 여러 번 저질렀다. 밴 하나로 랭커 계정이 아웃되면 그 자체로 전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족전쟁에서 어드민의 부당 개입은 당연히 지적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어드민들은 이것저것 사고를 너무 많이 쳤다. 어드민 ‘헷지호그’는 겜갤에 나타나서 유저와 키배를 벌인다던지 등의 기행도 있었다. 하지만 어드민들도 나름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땡전 한 푼도 받지 않는, 무보수 노동자였던 것이다.(....) 받아봤자 부족전쟁 계정에 프리미엄 달아주는 것이 고작이고 나머지는 하루를 꼬박 부족전쟁에 투자하며 6만 이상의 계정들의 규정 위반을 감독하고 처벌하며 유저와 대화도 해야 되는 열악한 실정이었다. 본사에서 그들에게 뭔가를 보내주긴 했는데, 달력이라나 뭐라나. 정말로 본사에서 그들을 챙길 생각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어도 홀대가 심하긴 했다. 그런데다가 어드민 총괄 담당자인 ‘코알라’는 무개념하게도 그들을 시시때때로 갈구었다. 무능한데 이어서 자신의 일까지도 모두 한국인 어드민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래놓곤 ‘코알라’는 자신의 업무를 완수했다고 본사에 보고했다. 당연히 본사에서는 ‘코알라’의 업무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걸 한 두 번이어야지, 수개월 동안 이러고 앉아있으니 어드민들은 미치고 돌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코알라’가 한국인 어드민들에게 주는 수당이나 보상까지도 가로챘다고 한다. (http://themk.tistory.com/30?srchid=BR1http://themk.tistory.com/30에서 언급되니 참고바람.)

결정적으로 어드민들과 유저들이 모두 분노하게 만든 일은, ‘코알라’가 벌인 프리미엄 계정 관련 논란이었다. 모 유저가 기간제 프리미엄 계정을 구매하였는데, 정작 프리미엄 계정은 자신이 구매한 절반에 못 미치는 기간만 적용된 것이다.(말인 즉 프리미엄 계정을 100일치를 질렀다면, 50일치 밖에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해당 유저는 어드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보상을 요청했다. 어드민들은 사실을 파악하고 알맞은 대응을 했다. 돈 관련 문제이니 그들도 성실하게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코알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건을 나중에 보고 받고 내린 조치는 해당 유저의 영구 밴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어드민들은 ‘코알라’ 몰래 해당 유저의 밴을 풀고 프리미엄을 정상 지급한 뒤에 은폐했다. ‘코알라’는 멍청하게도 이 사실을 몰랐다. 어드민 ‘헷지호그’는 겜갤에 이런 상황을 알렸고 ‘코알라’는 한동안 겜갤에서 영구까임권을 얻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어드민들은 이후로 계속 된 ‘코알라’의 막장 행각에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도찐개찐이란 비난은 받아야 된다. 지들도 그랬는데 뭘.(...) 어드민들도 자신들의 책임을 버려놓고 ‘코알라’에게 몰아가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코알라’의 막장 짓은 종래의 것들을 초월하는데다가 무보수 노동이라는 점에서 어드민들은 너무 과도하게 피로가 몰려 있었다. 더군다나 1서버가 8월의 대전쟁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이후에 열린 2,3세계는 1세계의 빛에 가려져 제대로 흥행을 이끌지 못하고 있었다. 어드민들도 지쳐 있었다.

08년 중엽부터 부족전쟁이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금지 판정을 받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오게임만 하더라도 몇 번이나 등급 판정을 받지 않고 게임을 서비스했단 이유로 정보통신부로부터 사이트를 차단당한 전력이 있었다. 인노게임스도 이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무단으로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었다. 뭐 굳이 이런 게임을 딱딱한 법률도 제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른의 사정. 프리미엄 계정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못 걷어서 안달 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튼 게임물등급위원회가 08년 말에 드디어 등급 심사 대상에 부족전쟁을 올리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됐다. 어드민부터 이 사실을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했지만 ‘코알라’는 아웃 오브 안중. 애당초 어드민도 부족전쟁를 정통부나 겜등위에 신고했다는데 어쩌라고.(....) 따라서 오게임이 했던 대로 부족전쟁도 슬슬 차단에 대비해야만 했다. 우회 접속 사이트를 마련한다던지 프록시 접속에 대해 임시적으로 허락한다던지 등으로 말이다.

09년 1월 15일 어드민 ‘헷지호그’는 프록시와 DNS 우회 접속에 대한 룰을 변경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프록시, DNS 우회 접속을 전면 금지시켰다! ‘’‘뭐하자는 거야!’‘’ 이것은 후일 ‘코알라’에게 보고되지 않은 어드민의 제멋대로 룰 변경이라고 알려졌다. 이후 벌어질 일들은 ‘코알라’는 사건이 벌어진지 한참 뒤에야 보고받았다. 그렇지만 룰 변경 공지는 금방 사라졌고, 올라간 상태에서도 유저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아니, 0.001%도 몰랐다고 해도 된다. 1,2,3세계의 유저들은 싸우느라 바빴거든.(....) 초치기 할 시간에 공지를 볼 여유가 어디 있는가? 이것도 어드민 ‘헷지호그’가 준비한 계략이었다고 한다.

드디어 09년 1월 22일 전후로 정통부에서 차단이 시작되었다. 겜등위는 이미 일주일 전 즈음에 부족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모든 유저들의 숙원인 강제 현실게이트가 작동된 것이다! ‘’‘이것이 진엔딩!’‘’ 차단은 SK 브로드밴드에서 먼저 했고, 그 뒤를 이어서 KT와 지방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까지 모두 완료되었다. 2~3일 정도를 걸쳐 진행되었으며 이 시간 동안 겜갤은 그야말로 멸망 앞에 놓인 종자들이 어떤지를 보여주었다. 관련 기록은 수시아의 찌질열전에서조차 실렸을 정도니, 참고하도록 하자.(....)

이 과정에서 당연하겠지만 유저들은 프록시나 DNS 우회를 시도하였다. 어드민의 융통성 따위는 내다 버린 채, ‘헷지호그’는 이를 좌시하다가 이튿날에 3천 명을 먼저 밴 했다. 이들 모두가 프록시와 DNS 우회로 인한 규정 위반이라고 알렸다. 1월 15일에 있었던 규정 변경을 몰랐던 유저들은 당연히 들끓었지만 ‘헷지호그’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또다시 오히려 만 명 이상의 유저들은 다시 밴 해버린다.(...) 이것은 22일부터 24일 사이에 어드민 ‘카브놋’에 의해 1,2,3세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차단은 1,2,3세계 순으로 따랐다. 특히 이때가 설날 연휴가 겹쳐 있어서 유저들은 충격과 공포. 대혼란을 겪으면서 기쁜 마음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이 쯤 되면 어드민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대강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어드민들이 게임을 망치려고 드는, 만화나 소설에서도 정말 찾기 어려운 진귀한 사례가 일어난 것이다. 어드민 ‘헷지호그’는 겜갤 등지에서 아예 대놓고 자신이 의도적으로 규정을 변경하여 밴의 사유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아니, 사실은 3천 명 밴부터 그런 적용은 없었다. 광역 밴으로 1세계 유저들은 단 번에 몇 명의 생존자[31]를 빼고 남김없이 밴 당했다. 2세계는 저 점수대를 제외한 모두가 밴 당하고, 3세계는 1페이지 부족들이 밴 당했다. 차단 이유도 처음에 공지되었던 프록시, DNS 우회 위반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는 기괴한 말들로 바뀐다. 인류보완계획이니, 현게 타서 여친이나 만들고 희희덕대라는 말까지 적었다.(...) 어드민들이 미쳐 날뛰는 것이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헷지호그’나 ‘카브놋’이나 그런 말들을 하면서 이를 노예 해방이라고 자축했다. ‘헷지호그’는 스스로를 링컨에 비유하는 병크도 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에이브러햄 헷지호그(....) 헌데 진심으로 감사한 사람들도 있다. 흠좀무.

차단 상태에서 밴까지 먹게 된 수 만의 유저들은 반 이상이 접속을 포기해버렸다. 밴을 당하면 바로 계정이 삭제되지 않고 일정 기간 방치되다가 삭제되는 특성 상, 2월 초순이 넘어가면 1,2,3세계의 많은 지역이 회광이 될 위기에 처하였다. 그런데다가 어드민툴에서 밴은 대단위로 가능하더라도 언밴은 한 번에 1인 밖에 되지 않아, 처리가 몹시 어려웠다. 1세계 유저들은 노예해방을 핑계로 엄청난 수가 현게를 탔다. 여기에서 수뇌부가 증발한 경우는 바로 달 부족. 오피서고 수뇌고 죄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사건 이후 3분의 1에 달하는 유저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방치 된 계정들까지 더하면 괴멸 수준에 가깝다. 실제로 밴이 풀린 뒤로 많은 유저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만큼 부족전쟁에 심신이 지쳤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어드민들의 행각에 진심으로 분노했던 거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1월 31일부터 어드민 ‘바알’이 언밴 활동에 나섰다. 어드민이라도 다 나쁜 놈만 있는 건 아니다. 이게 더 나쁜 거 아닌가?‘바알’의 경우에는 언밴 활동을 위해 사방팔방 활동했다. 집이 사용하는 인터넷은 차단당하는 바람에 아직 차단되지 않은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피시방에서 며칠 동안 언밴만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나마 2월 2일에 어드민 ‘치킨’이 언밴 매크로를 만들어서 전체 밴을 해제했다. 물론 이 탓에 진짜 밴 먹는 유저들까지도 졸지에 면죄부를 부여받았다. 2월 3일에는 부족전쟁의 우회 접속로가 만들어졌고, 프록시나 DNS 우회가 전면 허락되었다. ‘헷지호그’와 ‘카브놋’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코알라’에 의해 축출되었다. ‘헷지호그’는 잠적했고, ‘카브놋’은 제 본업오게임[32]으로 돌아가려다가 군대를 갔다. 결국 일단의 사건은 일부 어드민의 헌신적인 노력 덕택에 1세계가 단체로 멸망하는 꼴은 겨우 면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1세계는 정말 끝날 뻔 했다. 아니, 끝났으면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8월의 반전과 이후의 공방, 그리고 재역전이라는 지지부진한 내용보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8월의 반전으로 끝났다. 어떻게 보면 1세계의 생명력은 이 전쟁을 끝으로 끊겼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1세계는 살아남았으며 유저들은 다시 돌아와 전쟁을 지속했다. 차단 사건으로 인하여 1세계의 정세는 다시 크게 변동했다.

3강 체제의 종말

어드민이 일으킨 광풍이 지나간 다음으로 09년 5월에 경향게임스가 판권을 사들이고 서비스를 대행하기 전까지는 인노게임스는 게임 운영에 손을 놓아 버리게 되었다. 정통부 차단을 겪으면서 인노게임스경향게임스에 한국 서비스를 맡기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논란의 결과로 어드민 ‘헷지호그’, ‘카브놋’이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후에 얼굴마담은 ‘바알’과 ‘치킨’이 전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통부는 우회 접속을 다시 막았다. 결국 어드민들은 ‘헷지호그’가 묶어버린 우회 접속 금지를 해제했다. 경향게임스가 서비스를 재개하기 이전까지는 프록시, DNS 우회 등이 허락된 것이다. 이로서 5월 전까지는 종래의 규정이 거의 무력화 되었다. 우회 접속을 악용하여 다중 계정을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해킹하는 사례도 여럿 나타났다. 무법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09년 2월이 되고서도 다수의 유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옥 같은 게임에서 해방되었으니 냉큼 접은 것도 있고, 차단-밴 사태로 인해 악감정이 쌓인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3강 측 인원들은 숙원이었던 케이탑 공략을 성공리에 치러서 더 이상 이전만큼의 열의가 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달과 불사조의 랭커 다수가 현게를 타버렸다. 달은 불사조의 몇 배로 아주 심각한 대타격을 입었는데, 아예 수뇌부 전체가 증발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차단-밴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달의 수뇌부와 관료진들은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렸는데, 이 과정에서 신뢰받지 못한 이들까지나 들이거나 하는 등으로 제5열을 스스로 심은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기존의 명망 높은 수뇌들과 유능한 오피서들이 사라짐으로서 달의 조직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달의 본 카페인 MTW에 들어가서 물어본 결과로는, '전부 질렸다'라고 한다. 옛 MTW의 주요 근거지였던 44대륙에서는 랭커 다수가 증발하고 심지어는 대륙의 지휘체계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비록 북방군이 유지되고는 있었지만, 이들도 북극곰의 적극적인 남진에 차츰 전선이 뒤로 밀려나고 있어 패전 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결국 부족장마저 현실 사정으로 활동이 거의 정지되었다. 이것은 달의 지도부가 완전히 없어졌음을 의미하였다. 단군북극곰은 이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53대륙을 완전히 점거한 이후에 54대륙의 달 세력들을 구축시키고, 이윽고 44대륙으로까지 진공했다. 북극곰은 33대륙을 상당수 침식했다. 지휘가 끊긴 달 유저들은 각자 항복하거나 계정을 버리고 게임을 접었다.

단군을 주도한 ‘푸른노을’은 몹시 열성적인 사나이였다. 외부에 알려진 것은 부족타임즈케이탑이 공동으로 부족7080을 공격하면서 케이탑 측 워팀에 ‘푸른노을’이라는 인물이 알려졌다. 이후로 3강에 공격에 그는 조기에 무너졌고, 엘리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후 계정을 복구하거나 갈아타는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케이탑 몰락 전후로 케이탑과 주변 세력들을 통솔하는 인물로 급부상했다. 그의 주도 하에 세워진 단군은 사실상 제3세력이 되었고, 케이탑과의 연관성도 단절되었다. 그러나 달과 불사조단군케이탑의 후신으로 간주하여 재선전포고 했다. ‘푸른노을’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단군을 이끌고 이후 1년 넘게 전쟁을 계속했다.

푸른노을’과 단군은 달을 주로 공략하고 불사조와는 대치 상태를 계속하면서 세력을 규합하였다. 개마무사단쥬신으로 개칭시켜 세력권에 넣었고, 무스펠하임도 세력권에 넣었다. 남서 일대에서도 남서련 창설 당시부터 끝까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했었던 로젠다로 등을 흡수했다. 북극곰을 중심으로 한 북삼련과의 연대도 잊지 않았다. 북삼련은 북서 외곽 지역을 청소하면서 달 북방군을 돌파하고 계속 남하했다. 본인 실력도 빠르게 성장하여 상당한 랭커로 자라났다. 이와 함께 그가 선발한 남서련 등 출신의 멤버들 역시 실력이 몹시 출중해 여기저기에서 격전을 치렀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푸른노을’은 끊임없이 계략을 준비하고 전투를 겪으면서 자신의 전략을 이루었다. 달이 최종 붕괴되고 불사조와의 최종 전쟁이 되는 시점까지 그는 격렬하게 최전선에서 싸웠다. ‘푸른노을’이 있었기에 케이탑 축출 이후의 케이탑 세력들은 지금에까지 존속될 수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최종 전쟁이라는 대업에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푸른노을’이 이전 3강 멤버에 월등히 앞선다는 것은 아니다. 주지해야 될 사실은 ‘푸른노을’이 활동할 시점에서 3강의 주요 멤버들, 무엇보다도 케이탑 몰락에 최선을 다했던 불사조나 달의 멤버들은 대부분 현게를 타버렸다. 그들은 케이탑 몰락이 숙원이었고, 그 숙원을 이룬 시점에서 더 이상의 게임은 의미가 없었다. 사실 ‘푸른노을’은 차단-밴 사건 이전까지도 불사조 랭커 몇에게 농락당하기도 했고, 부족7080 전쟁에서 끝내 악연이 되었던 ‘sarada’에게도 밀리는 입장이었다. ‘푸른노을’은 제대로 3강 전성기와 상대하지 않았다고 봐야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시기의 3강의 몰락은 눈 여겨야 될 사안이다. ‘푸른노을’과 단군의 활약, 그리고 차단-밴 사건으로 촉발 된 대규모 현게는 3강의 전력을 약화시켰다. 무엇보다 불사조판데모니엄이 서로 전쟁을 치르면서 사실상 단군과의 전쟁은 달과 불사조가 전담해야 됐다. 그렇지만 달이 빠르게 붕괴됨에 따라서 불사조는 위기에 몰렸다. 허나 불사조 자체의 힘은 강력하여 구 개마무사단쥬신을 압도하고, 판데모니엄을 격파했으며, 북서 방면으로 침공했고, 남서에서는 단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09년 5월까지 불사조는 달에 대해 그렇게 배려를 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배신하지는 않았으나, 외교 라인이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다. 달의 오피서들이 사라졌고 불사조의 오피서들은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더군다나 양 측은 서로의 분쟁을 제어하기 위해서 접경되는 지역에 경계를 그어버림에 따라 지원의 가능성도 없었다. 달이 최악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에도 불사조는 달 출신 망명자 몇 명을 받고는 끝났다.

달의 회생시도는 몇 번 있었다. 부족장 부재 사태에서 북동 방면에 책임을 맡은 유저가 부족장의 동의하에 평화적인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의 주도는 얼마 가지 못했고, 그마저도 활동이 멎어버리면서 부족 자체의 회생 가능성은 사라졌다. 비록 하급 오피서 여럿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어떠한 대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시나브로불사조와 합병하여 불사조가 세 세력을 지휘해야 된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그러나 달 오피서의 무능, 불사조 측의 상황 판단 미스로 인하여 이 시도는 불발되었다. 이것으로 달의 마지막 시도는 끝났다. 검은달은 쿠데타 사태에서 정리되어 하얀달에 흡수되었고, 하얀달 유저들은 북방군 주도로 신의명가로 독립하게 된다. 이후 신의명가단군붉은곰에 항복하여 한동안 괴뢰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됐다. 달에 소수 부족원이 남아 항전했지만 이마저도 거의 정리됐다. 이로서 달은 경향게임스 서비스 이전인 3월 즈음에 멸망해버렸다.

판데모니엄은 이보다는 좀 더 오래 갔다. 대부분 간부들이 현게를 타자, 한국 최초부족이었던 HKK와 [33] 북동 방위의 중소 부족 발해 부족원들로 부터 간부를 수혈해서 쓰기까지 한다. 하지만 판데모니엄을 이전 간부진과 비교할때 비교적 의욕을 가지고 잘 이끌었던 이들마저 현게를 타거나 대부분 잠적하자 부족 간부진부터 모자란 상황. 결국 열의에만 넘쳐서 간부를 자청한 중학생 유저들을 간부로 쓰기에 이른다. 이들은 전쟁 리드는 고사하고 동맹 부족이었던 16대륙의 약소 영농 부족 청령 등에게 흡수 합병이나 반 협박식으로 논의하는 등[34] 미숙한 운영 태도를 보인다. 이런식이니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다. 아가레스, 인페르노, 무스펠하임과 같은 연방 부족들은 서로 연락이 두절되거나, 따로 행동했다. 연방이라는 자체의 의미가 상실되어 있었다. 그런데다가 불사조와의 전선은 연일 패퇴 일색이었다. 물량으로도 극복되기 어려운 불사조, 붉은곰의 무지막지한 공세에 판데모니엄 본 부족의 북동 남부 일대가 불사조에게, 판데모니엄의 서부 지역 아가레스붉은곰에게 점령당했다. 이것은 판데모니엄 자체의 몰락을 가속화 시키면서 결국 그들은 불사조에 항복, 7월 14일에 해체된 이후에 각각 지역에 따라 불사조, 신의명가, 붉은곰으로 이동[35]하였다.

달의 몰락과 판데모니엄의 해체로 08년 7월에 시작되었던 3강 체제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3강의 유일한 적자는 불사조가 유일했고, 불사조는 사방이 온통 적이었다. 이제 그들은 최종적으로 단군과 전쟁을 결판내야만 했다. 이것이 최종 전쟁의 시작이다.[36]

재정립 시대

서부를 광대하게 지배하던 검은달, 하얀달 부족이 무너짐에 따라서 북서와 남서의 패권은 단군 세력권이 되었다. 하지만 달이 북서와 남서를 완벽하게 통제하는데는 실패한 것처럼 단군 세력도 서부 전역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단군은 탄생 이후로 기존 남서련과의 전쟁을 수행해야 됐다. 남서련은 대규모 탈퇴와 붕괴 위기 이후로 아미쿠스라 이름을 개칭한 연방 부족 형태로 전환되었지만 이후 아미쿠스E[37]가 탈퇴해 히어로즈로 개칭, 독립하는 등의 사건은 끊이질 않았다. 더욱이 이전에 남서련을 탈퇴한 레퀴엠과도 관계가 악화되었고, 천명이나 여우비와 같은 신흥 중소 부족의 등장은 남서 일대의 외교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달과 불사조에 적대하고는 있었으나 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해나갔다. 중소 부족들은 단군아미쿠스 사이에서 관계를 저울질하면서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북서도 마찬가지의 재정립이 이루어졌다. 의 붕괴 이후 4월경에 1세계 끝까지와 신의명가가 달의 후손격으로 등장하였다. 북방 지역 출신의 유저들이 중심축으로 1세계 끝까지는 항전을 내세웠지만 5월에 이르자 상호 족장 간의 합의하에 신의명가에 흡수됐다. 신의명가단군 세력과 평화 조약을 맺었지만 단군의 괴뢰 부족으로서 꼭두각시 역할을 감당해야만 했다. 북극곰과 관계를 긴밀히 하여 판데모니엄을 공략하는 등의 활동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달 붕괴 이전에 불사조로 도피한 소수의 달 유저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신의명가가 과거의 명성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해나갔다. 한편 달의 붕괴로 말미암아 사실상 목표를 달성한 북삼련도 이제 세력이 재편되어야 했다. 달과의 전쟁에 승리하긴 하였지만 이들 역시 차단 사건의 광풍에 휩쓸려 많은 유저들을 잃었다. 달 해체 이전 겜등위 차단의 여파로 홍우예향함과 북극곰은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붉은곰으로 재편 된 바 있다. 이 붉은곰은 주변의 여러 중소 부족인 발해와 유머나라의 15대륙군, USSR, 천랑성 등을 흡수하고 북동 방면으로 진출을 꾀하면서 세력을 확대해나갔다. 또한 아스트랄은 리턴과 AKA와 합병하여 은하수로 개칭하였다.

서부의 대대적인 혼란은 세력 개편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더욱 가중되었다. 남서의 경우, 아미쿠스에서 독립한 레퀴엠(후일 친위대로 개편)과 히어로즈가 이리저리 모태와 대립을 하면서도 단군과 연대하거나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군 역시 아미쿠스를 견제하기 위해 레퀴엠이나 히어로즈를 끌어안으려 노력했다. 아미쿠스는 이 셋 모두를 제거하고자 열성적으로 날뛰었다. 여우비는 세력 안정을 위해 단군과 연합하기도 하였다. 과거 베어즈에서 독립했던 천명은 꾸준히 부족들을 흡수하고 또 분열을 겪었지만 히어로즈 일부를 흡수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갔다.

2009년 6월 말부터는 북서와 남서의 충돌이 가시화 됐다. 은하수와 친위대의 전쟁을 시작으로 단군 세력권 내에서의 싸움이 빗발쳤다. 주로 구 남서련 세력과 단군 세력의 내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관계를 복잡해졌다. 배신이 시작된 것이다. 09년 10월에는 가령 단군은하수ROA와의 전쟁을 펼쳐지고 중도에 신의명가단군 측에 가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11월 말에 신의명가은하수가 떨어져 나갔다.

한편으로 7월 즈음 직전까지 붉은곰은 북동 방면의 판데모니엄을 공략하였다. 7월 14일경에 판데모니엄이 해체되자, 이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8월 3일경 불사조가 기습적으로 붉은곰을 공격하면서 북동과 북서에서의 싸움이 일어났다. 근데 어차피 붉은곰단군 세력권이고, 불사조는 오래 전부터 단군 등과 싸웠으니 딱히 선전포고가 필요없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타 세력과는 우호 관계에 있을뿐 독립 부족이라 자칭하던 붉은곰 입장에서 보면 당황스럽고 어이 없는 일. 당시 붉은곰 족장 Das Boot(게임갤러리 무나와라)을 비롯해 붉은곰 수뇌부들은 불사조가 이런 부족일지 몰랐다[38]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남동의 불사조는 이 시기에 북동의 판데모니엄을 굴복시키고, 쥬신 역시 무너뜨렸다. 쥬신은 세력 약화[39]로 09년 11월경에 단군에 자연적으로 흡수되었다. 동부 전역에서도 불사조는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여 단군이 이룬 적대적 포위망을 분쇄한 것이다.

09년 8월 14일에 남서에서 서로 반목하던 친위대와 히어로즈, 아미쿠스는 다시 ROA로 합병하여 단군과 전쟁을 결의했다. 또한 동일 천명불사조가 합병했다. 이에 앞서서 단군붉은곰을 8월 10일에 사실상 흡수했다. 8월 10일부터 14일은 이른바 합병전쟁이라 불린다. 하지만 재정립 시대는 계속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단군은하수ROA와 치른 전쟁이라든지 등에서 드디어 단군 세력권의 분열이 시작된다.

2010년이 되자 재정립 시대는 격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09년 12월경에 있었던 은하수와 청령 간의 전쟁에서 양측이 합병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은하수의 독자노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0년 1월 18일에 신의명가가 드디어 단군과의 협약을 깨고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와 동시에 불사조로아(ROA)가 신의명가와 연대 노선[40]을 갖추었다. 이 시점에서 은하수의 행동을 집중하여야 되는데, 바로 2월 11일에 신의명가와 합병을 하게 된 것이다. 은하수신의명가 간의 전쟁이 종결되고 수개월 뒤에 이들이 합병함으로서 기존 단군 세력권에서 독립적인 성향이 있던 은하수는 아예 대놓고 단군 세력권과 결별하는 계기를 가졌다. ‘푸른노을’은 이에 격분해 단군은하수신의명가가 합병한 통합 부족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은하수단군에 소속된 붉은곰과 외교 노선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의명가의 외교 노선을 존중하기로 하면서 단군과는 완벽하게 결별을 하게 된다. 이들은 2월 23일에 임모탈로 개명하였고, 불사조와 동맹을 체결하면서 완벽하게 불사조 노선으로 진입하였다. 이로서 단군은 역으로 고립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3월 11일에는 불사조 부족이 여우비 부족을 기습 공격했다. 임모탈에 대한 공격의 보복성 공격이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재정립 시대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이 재정립 시대는 2009년 내내 달 붕괴 이후의 서부 전역에서 각 부족들이 새로운 헤게모니를 따르거나 반대하는 등으로 세력을 갖추어나간걸 지칭한다. 이것은 이전의 춘추전국시대보다 오래 지속되어 2010년 3월경에서야 끝날 수 있었다. 허나 이 재정립 시대를 거치면서 단군은 역시 자신들의 패권 기반을 완벽하게 장악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으로 잠식당하고야 말았다. 단군과 ‘푸른노을’은 남서련 시절부터 적이 의외로 많았다. 달을 무너뜨렸어도 불사조는 그나마 건재하였으며 불사조를 제약하던 동부 일대의 연합 세력들 (운영 문제로 해체된 판데모니엄단군의 혈맹 쥬신 부족을 말한다.)은 꽤 많이 손실되거나 무너졌다. 그런데다 서부 일대의 여러 부족들이 단군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로 은하수는 북서 일대에 큰 세력권을 형성한 상태에서 동부 일대를 장악한 불사조와 함께 단군을 압박하기에 이른 것이다. 단군과 ‘푸른노을’은 08년부터 최악의 전선에서 싸워온 백전노장이었으나, 이런 상황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 재정립 시대가 2010년을 넘어서야 끝나게 되었고, 이 시대를 기점으로 1세계는 드디어 최종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제 진정한 승자를 가릴 때가 온 것이다.

푸른 하늘에 지는 별

천지인 (1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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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은 단군에게 있어서 최악의 달이었다. ‘푸른노을’은 가중된 부담과 현실 여건 등으로 인하여 현실 게이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단군 전체의 전투력도 많이 약화된 상태로, 기존의 ‘이동꾸옹’ 같은 기라성의 랭커들이 아직은 많았으나 한참 달을 집중 공략하고 불사조를 곤란하게 만들던 시기의 숫자는 결코 아니었다. 남은 이들에겐 많은 부담감이 지어져 있었으며 심지어는 빈 계정들이 주인 없이 방치된 형국이었다. 단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에 그들의 역량이 그렇게 크지 못한 편이었고, 불사조는 오뚜기보다 강하게 위기를 극복하여 역으로 단군을 제압하고자 했다. 그리고 은하수로아, 신의명가와 합병하면서 임모탈로 개칭, 이후에 단군과 적대하면서 서부 일대의 패권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단군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FINAL’로 개칭하였다. 위기에 대응하는 개편이었으나 실질적인 형국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알 수가 없다. 노블 스코어에서 압도적인 수세에 밀린 것은 변함이 없었다.

2010년 2월부터 4월까지 1세계는 세 개의 세력으로 분할되었다. ‘단군’과 ‘불사조’ 그리고 ‘임모탈’이었다. 여기에서 세력이 강대한 것은 동부 일대를 거의 장악해버린 불사조였고, 그 뒤를 따라서 임모탈이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군붉은곰의 15대륙 일대와 남서 코어부근의 영역만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실질적인 전력에서는 단군임모탈보다 우세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 전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형세는 불사조임모탈단군을 공격하고 있어서 단군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오피서의 소진은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까지 단군을 지도해오던 ‘푸른노을’이 현직에서 물러난 4월 즈음에 결국 단군 수뇌부는 전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임모탈과 협의 하에 4월 20일 임모탈과 종전 조약을 체결하고, 21일에는 아예 임모탈과 합병을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로서 단군 세력권까지 더한 임모탈은 다시금 통합부족이라 개칭, 서부 일대의 패권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만다. 임모탈로서는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익이었다. 이것은 실로 대단한 사건으로, 08년 8월의 역전 이후로 오락가락했던 서부 지역의 패권을 친 케이탑이나 반 케이탑도 아닌 임모탈이란 신생 부족이 완전하게 쥐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단군의 세력을 고스란히 가져왔다는 점은 추후 불사조를 공략함에 있어서 커다란 전력이었다. 불사조는 비록 거침없이 달려왔다 할지라도 소모된 힘을 어디서 충전할 수도, 아낄 수도 없었다. 단군을 끝장내자는 심산으로 게임을 했던 불사조로서는 이 상황을 결코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불사조 역시 4월 23일에 청령을 흡수하여 대응 노선을 취했고,[41] 24일에는 통합부족에 선전포고 하여 전쟁 관계에 돌입했다. 29일에는 여우비와 종전했다.

이것을 누구보다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불사조보다는 바로 ‘푸른노을’ 본인이었을 것이다. 재정립 시대 동안에 임모탈의 전신 중에 하나인 은하수는 과거 북삼련 시절에 아스트랄이 있었고, 이후에도 단군 세력권의 하나로 존재해 왔었다. 그런 이들이 달의 붕괴 이후에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가면서 신의명가로아를 합병하는 것에 대단한 배신감을 느껴왔었다. 그런데다가 이제는 그가 일궈놓은 단군을 낼름 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4월 20일과 21일에 있었던 사실을 접한 뒤인 25일, 그는 급히 현장에 복귀하여 단군에게 합병 취소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동시에 평생의 숙적이었던 불사조에게 연락을 취하여 임모탈에 대한 연합 노선을 요청하였다. 기존 ‘셀레스’ 등의 단군 수뇌부의 결정을 전적으로 반박하는 그의 행동 때문에 합병 자체의 진도는 늦어지게 됐다. 허나 이것은 임모탈단군의 합병을 결국 저지하지 못했다. 단군은 힘이 빠진 상태에 과거 그나마 관계가 있었던 임모탈의 품에 안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셀레스’ 등에 의해 ‘푸른노을’의 합병 취소 선언은 부정되었다. 더욱이 불사조 측에서는 ‘푸른노을’의 주장을 거부하였고, 대신에 불사조로 건너와 대항할 것을 제안했다. ‘푸른노을’은 단군에서의 영향력을 잃음과 동시에 불사조의 제안을 거절함으로서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리고 결국 단군임모탈의 합병은 완료되었다. 허무해진 그는 이후 종적을 거의 감추었다.

푸른노을’이 비로 3강의 올스타들과 직접 대결을 펼치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이 이뤄놓은 판을 깨부수는 결정적인 인물이었다. 게임 내외적 실력이 출중하였으며 달을 우선 무너뜨리고 불사조를 다음에 상대하려는 전략적 안목을 끝내 실현시켜냈다. 그런 인물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자신의 적들이 아닌, 동지들에게 빼앗겨 버렸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의 극치다. 그의 희망은 그렇게 허무하게 별똥별처럼 떨어져버렸다. 부족전쟁 1세계에서 어쩌면 가장 비극적인 유저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을 향한 헛발질

어쨌든, 2010년 5월 15일 통합부족은 이름을 천지인으로 개칭하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 불사조와의 전쟁을 지속되어, 사실상 양대 세력의 최종 전쟁이 진행되었다. 전력비 상에서는 불사조천지인에 비해 불리하였다. 양 세력간 피로도는 심각한 수준이 아닌, 상호 애증으로까지 번져오를 정도로 심하게 누적되어 있었다.

10년 6월 27일, 푸른노을을 비롯한 ONE[42] 멤버들은 천지인에 합류하였다. 불사조에 갈지 천지인에 갈지 고민을 꽤 많이 한 모양이지만, 옛 정을 못잊어서인지 천지인으로 합류. 드라마틱한 최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지만, 능력은 어디 가지 않아서 합류하자마자 일주일만에 98개를 노블하는 기염을 토하며 어마어마한 노예력을 과시하였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천지인은 걸핏 보면 푸른노을을 비롯한 정예 단군, 붉은곰, 달 멤버와 막강한 후방 세력이 합쳐진 불사조 이상의 부족이었으나, 오랜 거대 부족의 리스크를 동시에 떠안고 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인 창설 초기 어마어마한 기대와 충격과 달리 노블스코어는 불사조가 앞질러 나갔으며[43] 천지인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놓은 문제 속에 잡혀버렸다.

앞서 언급되었던 수많은 거대 부족들은 다수의 부족원들을 보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부족 등에게 패배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는 밀집형 부족이 정착된 후로 더욱 심해진 경우인데, 왜냐면 너무 많은 지역에 고도의 밀집을 갖춘 부족의 코어에는 정말로 먹을게 없어 굶어죽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코어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폭발적인 성장력은 그 부족의 위세를 드높여주나, 코어를 장악한 뒤로 남은 적은 없게 된다. 따라서 다른 지역으로 확장을 해야 되는데, 불행히도 이 게임은 오게임처럼 은하를 점핑하고 다니질 못하고 어디 이동하는데 몇 시간 기다리고 앉아야되는데다 그마저도 방어되면 작살나기 일쑤니 확장도 여의치 않다.(...) 그마저도 다른 지역이 동 세력권이며 확장마저 그림의 떡. 이렇게 될 경우에 코어 유저들은 마을 경영과 같은 영농 플레이로 돌아서며, 당연히 게임 실력은 녹슨다. 더불어서 게임도 질린다. 물론 분명히 이런 지역이 서너 대륙 있다면 지원과 공격이 작살난다. 허나 적절한 통제 없이 가만히 놔두면 대륙 내 랭커는 모조리 증발한다. 그렇게 작살난 부족이 한 둘이 아니걸랑. 게임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부족은 끊임없이 전쟁을 유도하고 심지어는 계정을 들었다 내렸다 할 정도의 결단력을 갖춰야 하는데,

아. 천지인, 특히 은하수-로아 계열 부족은 그런 능력이 최저에 달하는 부족이었다. 이건 사실 천지인 이전 시절부터 증명되어, 단군이 남부에서 내전에 돌입하였을 때에도 다수의 세력임에도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아미쿠스라던지... 또 북서에서 구 달 세력과 붉은곰 말고 잡다한 북서 애들은 사실 폐급이었다.[44] 그러니까 문제도 꽤 오래 전부터 끌고왔던 거다. 덩치만 크지 아무 것도 못하던 시나브로와 도대체 뭐가 다를까.(....)

이런 까닭에 내부의 곰팡이가 점차 심각해지던 와중에 전선이 격렬해지면서 북부를 제외한 [45] 대부분의 전선에서 방어 지원은 미친듯이 쏟아졌다. 이미 1세계의 전투는 천 단위가 넘어가는 공격 부대가 나타났으므로 끼워넣기 방어가 필요한 1세계 특성상 고도의 방어 전술을 펼쳐야 되는데, 미안한데 그런거 할 유저가 넘쳐났음 단군 라인 제외 천지인 부족원들은 합병 전에 이미 단군 집어먹고 불사조와 최종대결을 했어야 됐다. 즉 불가능했단 얘기. 끼워넣기가 아니더라도 가능한 방어이지만 그럴 경우에 방자 측 손실이 천문한적인데다가 방어병과 공격병 생산 중에 피해를 빠르게 수습하는건 바로 공격병이니, 공자의 재공세가 방자의 충원보다 빠르다는 거.

크리티컬이라고 해보자면, 사실 천지인 중남부 지역의 최전선은 방어 지원조차 거의 없었다. 앞서 말했던 영농의 병폐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된 부족 지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그 이전부터 질리도록 싸운 구 단군 멤버에게 집중되었으며, 그들은 피로가 더욱 누적되어 전쟁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되는 계기가 됐다. 불사조는 악으로 깡으로 버틴건지 참 대단할 성 싶지만(...) 이미 그만한 세력에 고도의 전술까지 구비하였으므로 약한게 더 이상하다.

푸른노을의 패전선언

2010년 12월 31일 천지인의 부족장 Andante가 對불사조전에서 패배했음을 선언하였다[46].

이후의 자유게시판에 Andante[47]가 써놓은 게시글을 보면, 천지인의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Andante는 패전 선언문에서 전방 유저가 책임 지고 계정 삭제 후 현게 탈 것과 천지인 부족을 해체 할 의사를 피력하였다.

한편 천지인의 패전에 이은 2011년 1월 1일자 해체에도. 불사조와의 전선에서 밀리지 않은 북부의 붉은곰을 비롯해 남동 전방 지역에 여전히 남아있는 쥬신, 중부 전방 지역의 Legend와 같은 천지인의 연방 부족이 유지되고 있다.

불사조 역시 이제는 불사조 코어가 된 85대륙 기반의 여우비 부족을 적대 설정 하고 전 방위의 구 달 계열과 단군 계열 천지인 유저들의 회광을 적극적으로 흡수 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부족 부족원 다수는 운영팀이 서버 통일로 판단하여 리셋하는 것도 바라지는 않는 듯 하다. 부족을 영원히 할 기세. 불사조천지인의 일부 부족원은 천지인불사조가 하나가 되어 신규서버 밀리샤(8세계)로 넘어가자고 하지만 포럼을 보면 소수의견으로 묵살 당한 듯.

결국에 길고 또 돌고 돌던 1세계의 정세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엔딩치고는 너무 허무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다행이지!

양강체제 그 이후

하지만! 부족전쟁은 끝이 아니었다.[48] 천지인이 해체되고 현게탄 수뇌부나 랭커들. 그리고 불사조로 이적한 일부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각자 자신들만의 부족을 꾸리기에 이르렀다. 이러니깐 부족전쟁이 마약이라는 소리가 나오는거다. 게임 같이 접자고 부족이 폭파되도 또 부족을 일구고 전쟁을 한다....

우선 천지인 연방의 일원으로 부족명만 유지되는 수준이었던 붉은곰쥬신, LegendMooN[49]이 확대된다. 붉은곰은 특히 구 천지인 유저들을 적극 유입시키면서 불사조의 새로운 적들 중 가장 막강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전쟁도 가장 치열하게 했다고 알려져있다.

한편, 구 천지인의 일부 랭커들은 신 쌈닭이나 건곤일척 등 기존 소형 부족으로 귀순해 새로운 미래를 꿈꿔보기도.

그리고..... 부족전쟁 계정 삭제기간인 5일~14일이 지나고... 1세계, 특히 1세계의 서쪽 지도는 거대한 구멍으로 뻥뻥 뚤린다. 현게탄 구 천지인 유저들의 계정이 삭제되고, 그들의 마을은 야만인 마을이 된 것이다! 이는 겜등위 차단 이래로 가장 많은 고점수대 회광이라고 하며.. 역대 최대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현게를 타지못한 구 천지인의 부족전쟁 노예들은 자신들만의 부족을 결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구 로아와 구 단군 남서워팀 유저들이 모여 만든 현실 모임 기반의 루뚱클럽이 있다.

중부 후방 지역 (구 은하수, 신의명가, 단군후방)을 중심으론 메테오가 설립된다.

북서 지역 기반으로 콜로세움도 설립되었으며 여기는 구 천지인이 아니더라도 받아준다. 또한 여기는 구 천지인이 자신의 첫 부족이었던 사람들이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본 구 천지인의 마지막 족장이자... 이 글의 주 기여자에 의해 한국서버 1세계의 주인공 격이 되어버린 Andante(푸른노을)는 구 천지인 족장 가 은하수,ROA 출신 부족원에 대한 공개 비판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전부터 천지인합병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단군 출신과 신의명가 출신은 잘 싸워줬지만... 은하수 ROA 그 두 부족 출신의 상당수가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Legend를 설립해 은하수 ROA 출신자 까기에 나선다.

천지인의 2대족장이자 은하수를 만들기도 했던 왕자웨이가 이에 변호하면서 서로 병신병신하면서 구 천지인은 막장 이미지를 획득하지만 사실 푸른노을과 왕자웨이는 서로 형동생 하는 사이다.한다.

한편 2011년 1월에는 그 외에도 역사 연표를 제공하는 히스토리, 붉은곰의 컨슘령에 반발해 떨어져 나온 가연, 북쪽 끝의 지구 등이 중립 부족으로 설립되었다.

불사조여우비(여전히 남아있던 랭커급 유저가 있긴 있었다. 그가 바로 모던보이.)의 글을 통한 도발을 구실로, 여우비를 적대 설정한다. 세계 통일로 나아가려는 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사조 남부워팀의 다구리에 모던보이가 계삭하면서 사실상 불사조여우비의 전투는 불사조의 승리로 소강된다.

이 즈음 천지인 계열 부족끼리 외교 관계를 체결함은 물론. 붉은곰에서는 새로운 체제 형성을 위해 족장을 뽑으려는 부족원 투표를 하고 족장 활명수36 체제가 성립된다. 루뚱클럽은 소부족 JUNE를 흡수합병한다. 메테오 역시 내각을 정비한다. 콜로세움에서는 족장이 중립부족인 히스토리로 이적하고 친 붉은곰 성향의 2기 내각이 출범한다. 이 외에도 천지인 계열 부족들은 여전히 여전히 접지 못하고 달리는 노예들열심히 움직이는 사람이 많았다.

장미십자기사, 스파르타, UN, 르네상스, 건곤일척, 세계연방, 혼돈 등 세계대전속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명맥은 살아남은 소부족들은 자신들의 세를 키우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노력한다. 그러다가 소부족들은 대부분이 사실상 하나로 통합된다. 이게 나중에 아테나라는 최대의 소부족(이제 소부족이라고 부르기 애매할만큼 컸다.)을 이루게 된다.

그러는 동안 구 천지인의 랭커들이 합류한 쌈닭 부족은 여전히 1세계에 남아있던 K-TOP에 선전포고 하고 엘리시킨다. 우걱우걱. 케이탑이 점프대 제공을 안했다는 것. 수많은 부족전쟁 전쟁중에서 진짜 마을이 엘리된건(회광된거 제외)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련지. 랭킹 1등 이동꾸옹 등이 가입하면서 평균점수 2위에 빛나는[50] 소수정예부족이 된 쌈닭은 심슨가족으로 부족명을 바꾼다. 이후엔 다시 IU 부족이라고 개명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유저들은 이루어낸다. 점수 1,000만점 달성 유저 100명 돌파! 천지인 해체 직전 99명 달성까지 갔으나 천지인의 해체와 그에 따른 계정삭제로 2개월이 지나서야 돌파가 된 것이지만 결국 한국의 다른 어느 서버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어찌보면 이게 부족전쟁 유저들간의 양극화 현상이기도 하지만... 노력하면 따라잡을수도 있..으려나?

한편 구 천지인 유저 극소수와 신규 유저들이 뭉쳐 지구라는 부족을 만들었는데, 이부족이 막장 행보로 이따른 병크를 터뜨리며 다른 부족들의 노여움을 사서 멸망하기도 했다. 메테오붉은곰이 대부분 멸망시켰으며, 이때 살아남은 지구 족장을 비롯한 부족원들은 불사조로 도피한다.

다시 시작되는 세계대전

붉은곰 (1세계)


그렇게 1세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 하고있던 천지인의 공백이 나름대로 매워지는데에 3개월이라는 시간이 금새 지나고. 계정 해킹문제와 관련한 붉은곰-불사조 간의 분쟁사항 관련해 불사조의 상징적 인물인 bismark77(톨레도4400)는 포럼에서 붉은곰 공개적으로 디스한다.

이 디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불사조는, 구 천지인 상위랭커 다수가 포진해있던 소수정예 부족 심슨가족이 동맹을 체결하고 이를 공표한다. 1세계 끝까지 같이 하겠다는 내용이다. 공표 하루 뒤에 이들은 붉은곰을 상대로 전쟁 선전포고까지 한다. 그전에도 불사조붉은곰은 항상 전쟁하고 있기야 했지만 심슨가족의 불사조편 개입으로 양강체제와 달라진 양상의 새로운 세계전쟁이 시작된것이다.

이에 같은날, 붉은곰쥬신과 혈맹을 표방하는 발표를 한다. 이 즈음에 불사조에서, 루이오션스(냅)와 청령(과거 청령과 같음, 단 이번에는 불사조의 괴뢰 부족)이 독립 파생되어 나옴으로써 세계전쟁의 양상이 더 돋보인다.

이 세계대전 재 발발 시기와 맞물려 푸른노을(Andante)의 계정도 결국 부주의에 의해 삭제됨으로써 (일단 잠시 애도...) 진짜 새 시대란걸 유저들은 실감하게 되었다.

새 시대 전쟁의 개막을 알리는 모양새로, 붉은곰은 아기불사조 소속 반항아 유저에 대한 대규모 폭격 동원령을 내린다. 구 천지인의 폭격 동원령이 과거에 나름대로 재미를 봤었기에 이와 유사한 작전을 내린것이다. 붉은곰 측에서는 반항아 유저의 선 도발에 대한 대응이라 밝힌다.

마찬가지로 불사조·아기불사조붉은곰 족장 활명수36에 대한 대규모 폭격 동원령을 내린다. 불사조 측에서도 역시 붉은곰의 아기불사조 반항아 유저 폭격에 대한 대응이라 이야기 한다. 근데 어차피 적이잖아

뷹은곰은 이에 대응하고자 천지인 계열 부족인 콜로세움과 군사적 동맹 체결로 후방을 공고하게 하였다. 쥬신 또한 콜로세움과 동맹을 체결한다.

그리고 남쪽의 중견 부족이 된 루뚱클럽불사조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무료함을 이겨내지 못한 루뚱클럽이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 이에 불사조 남부워팀도 재가동 되었다고. 하나의 적을 상대하게 된 루뚱클럽붉은곰,쥬신과 동맹체결을 하니 반 불사조 성향의 붉은곰·루뚱클럽·쥬신·콜로세움 4부족 동맹체가 결성된다. 이 동맹체는 반(反) 불사조를 내세웠으며 주장과는 달리 부족 별로 외교는 차이가 있었다.

이 4부족이 동맹체라고는 하지만 부족간의 연계는 부족했다는 평도 있다. 북부의 붉은곰과 남부의 루뚱클럽불사조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곤 했지만 거리와 북쪽과 남쪽 끝이다보니 (사이에 불사조와 동맹인 심슨가족 부족이 있었다.) 서로 연계된 전쟁을 하지 못했다. 불사조 북부 워팀과 남부 워팀이 느슨하게나마 연계를 하는것과는 대조적인 모습니다. 쥬신은 소수의 유저만이 남아 불사조의 막대한 공습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일부 유저들이 돌아와 외교 라인을 재가동 시키는 등 활동하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콜로세움은 전쟁 경험이 적은 신규 유저들이 중심인 부족답게 전쟁에 있어서는 정말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붉은곰은 심슨가족과 싸웠지만 나머지 루뚱클럽, 쥬신, 콜로세움 3부족은 심슨가족과 우호적이거나 무외교를 유지하기도 했다.

격동하는 정세

새 천지인 (1세계)

천지인.jpg




이런 체제가 한동안 계속 된다. 붉은곰은 그러는 사이 족장 활명수36의 무리한 부족 운영으로 몇몇의 탈퇴자가 발생한다. 구 단군 시절부터 구 천지인 시절까지 북부 워팀으로 활약해 북방8인방, 또는 북부8대[51]의 일원으로 불리기도 한 윈터나이츠의 탈퇴가 대표적이다. 윈터나이츠 때문에 붉은곰 탈퇴했던 가연은 어쩌라고? 그는 탈퇴 후 그린피스라는 1인 부족을 세우기도 했다. 나중에 붉은곰 족장이 활명수36에서 진짜지구최강으로 바뀌면서 다시 친붉은곰적인 성격을 띄고, 2012년 초여름에는 다시 붉은곰의 일원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북방8인방의 대다수가 현게탄 이 상황에서 과연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이다.

윈터나이츠의 탈퇴에 영향을 받아 메테오 구역에 살던 붉은곰의 부족원이었던 khu94도 부족 탈퇴를 선언한다. 훈민정음이라는 소수 부족을 유지하고있던 구 천지인의 BlueMooN과 감귤선생은 khu94를 부족에 가입시키고 족장 직함을 달아준다. 그리고 자신들은 부족 원로가 된다. 그리고 훈민정음 부족을 구 천지인의 적통을 표방하며 신규유저를 중심으로 천지인:복수혈전(신 천지인)이라는 부족명으로 개칭한다. 신 천지인이 설립된 것이다. 이들은 부족명에서 알 수 있듯 천지인의 계승의식을 내세운다. 구 천지인의 수뇌부들과 랭커들을 자신들의 후견인으로 명시한 것. 초반에는 막장 플레이를 내세웠지만[52] 부족원이 늘어나게 되고[53] 점차 정규 부족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된다.

정규 부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부족원들의 게임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54]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이들은 미모의 보슬아치여성유저인[55] 족장 khu94를 부족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한 때 부족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이 khu94의 인증사진으로 해놓을 정도... 그 외에 정식 부족명을 <하늘 땅 사람 그리고 여신>으로 개칭하는 등이다. 족장 본인이 개편한건 아니겠지? 근데 이 방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해서 신 천지인 부족은 정규 부족이 되었음은 물론, 1세계에서 부족원이 가장 많은 부족이 되기도 한다. 이쯤되면 무섭다. 더 무서운건 부족원들에 따르면 이 부족 내부공지에는 '여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세력을 키운다.'나 '여신의 말에 무조건 따른다.' 같은 내용의 공지가 딱 올라와있다는것. 1세계에 남아있는 유저들이 여고생에 목마르긴 했나보다.

이런 보빨형태의 부족 운영을 못마땅하게 여긴 콜로세움이나, 붉은곰 남서부의 일부 부족원들과 무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후 구 천지인 간부들의 후견으로 이런 무력 사태는 정리 된다. 새 천지인 족장의 애교에 못이겨[56] 불사조는 이들과 동맹, 도끼질까지 했던 붉은곰NAP을 체결하는 등 '여신의 성역' 중립 부족으로 거듭나게 된다. 불사조붉은곰khu94만 보고 외교를 맺은 것 같지는 않지만 여신으로 1세계까 대동단결!, 참고로 지금까지 이랬던 부족은 전무하다. 수년 째 서로 앙숙인 불사조붉은곰이 동시에 인정한 부족이 새로운 천지인이고, 그 이유가 족장 khu94 때문이라는 말을 본다면 1세계는 지금 몇번의 세계전쟁과 수만명의 유저를 거쳐 여신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듯 하다. 女神 말고 女新

그리고 2012년 또 한 해가 밝았다. 햇수로는 5년, 한국 1세계가 열린지는 4주년 되는 해. 통일되어 끝나는 서버도 여러 곳 나오는 가운데 1세계는 여전히 치열하다.

이 치열함 속에 천지인 계열의 부족으로 서부 지역에서 나름대로 강한 세력을 자랑했던 메테오가 끝장난다. 메테오의 족장인 드래곤라자의 계정삭제와 수뇌부들의 갑작스럽지만 예상되기도 했던 현게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나머지 메테오 세력은 여신 천지인붉은곰으로 나누어 흩어진다. 일부 유저들은 메테오에 남고 여전히 메테오는 2개 대륙에서는 1순위를 차지한 채로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현게 유저들이라는게 정설. 부족의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는 주장이 대세를 얻고 있다. 메테오 부족 프로필은 이후에도 이미 접은 족장 드래곤라자와 수뇌부들, 그리고 타 부족으로 옮겨간 과거 간부의 이름이 써있는 상황으로 이를 증명한다.

불사조 세력과 붉은곰 세력의 전쟁은 서로간의 전선에 위치한 유저들을 유닛사살 랭커로 만들어줄 정도로 치열하고. 계속되는 엎치락 뒷치락하고 있다.

과거 1세계에 비하면 훨씬 못미치지만, 여전히 다른 서버에 비교하자면 치열하고 뜨거운 1세계. 과연 앞으로 1세계가 끝은 날 수 있을련지? 누구의 손에 끝이 날련지?

이 대답은 독자들에게 달려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1세계로 뛰어들어라!

주석 모음

[1] 여기저기에 부족전쟁을 가장 많이 홍보한 것은 바로 겜갤러들이었다. [2] 이 시기에는 정탐병을 보내는 행위가 공격이라는 말도 안돼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었다. 물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서버는 정탐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 전쟁은 첫 전쟁이라는 의의를 넘어서서 한국서버에 고리타분하게 자리잡을 '정탐=전쟁'이라는 황당한 공식의 조상님이 되신다. [3] 중고딩들이 오피서를 하는 경우에 벌어지는 일은 몹시 끔찍하다.(...) 부족을 말아먹기 일쑤요, 중2병이나 고2병의 고급 병맛 테이스트로 온갖 삽질을 하고 다닌다. 물론 개념 박히고 훼력 무한의 범상치 않은 아이들도 있으나, 그걸 넘어서 일단 오피서 짓 하면 십중팔구 수능 망한다. [4] 서너 명이서 수십 명의 유저들을 굴복시켰던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세인트의 핵심 오피서가 적진에 고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어에 성공하다 못해 역전하기도 하였다고. [5] 그러나 케이탑과 1페이지 명문 부족과의 외교 분쟁 시에는 관계가 험악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케이탑은 그들의 무력을 바탕으로 외교전에서 늘 우위에 있었다. 케이탑이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였을 시에는 전쟁이 되었으므로 1페이지 명문 부족들은 그들에게 불리한 것들을 알아서 바치면서 평화 공세를 펼쳤다. [6] 물론 그 부족의 힘에 따라 좌우할 수 있는 정도는 달랐다. [7] 제대로나마 내놓은 대책이 세인트의 방어선인 바위의 영역을 침공하자는 것인데, 이마저도 세인트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한다. [8] 한국서버 최악의 룰. 현재는 거의 사문화 되었지만, 예전에는 이것만큼 최악이고 끔찍한 룰도 없었을 것이다. 규정으로 공식화 된 것도 아니다. 1대1의 상황에선 부족의 대응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개인적인 문제로 해결하게 냅두자라는 것이 이 룰의 내용이나 강대 부족이 약소 부족을 상대로 이 룰을 이용해 수월하게 잡아먹는데 이용되었다. [9] 사실 세인트쌈닭(FTF+엄친아)의 합병은 케이탑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부분. 세인트쌈닭의 관계는 합병 직전 친하기는 했지만 과거 서로에 적대하던 적이 있던 역사를 고려할 때 두 부족이 합병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남동에서 이 합병으로 케이탑은 사실상 남동 지역에 손도 못 쓰게 됐다. 또 케이탑이 합병을 방해하기도 전에 대규모의 인원이 비밀리에 에 또 3일만에 합병 작업을 마무리시키는 위업을 토해냈다고. [10] 헌데 3강은 개전까지 케이탑의 힘을 과대평가하였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한 언플들은 죄다 케이탑이 절대강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3강은 그보다는 못 미치는 힘을 가진 것으로 묘사됐다. 3강 지도부도 케이탑의 약체화를 전혀 몰랐다고.(...) 당시 최고 수뇌부들의 뒷소문에 의하면 54대륙을 비롯한 남서지역을 모두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타임즈가 3강 중 최약체였기도 하고, 케이탑의 엘리트들은 모두 그 타임즈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 [11] 거기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것은 부족타임즈. 이후 이 둘은 동맹으로 거듭났다. 반년 뒤에는 아예 혈맹이 됐다.(...) 그리고 서로 배신조차 하지 않았다. 의리가 가장 튼튼했던 동맹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 [12] 문제는 베어즈는 그 전에 엄친아와의 밀약을 통해 레베비를 도와 반세인트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던 상태라는 것이었다. 베어즈의 배신으로 대대적인 반 세인트 전쟁 계획이 무너지자, 승산이 없어졌다고 판단한 엄친아는 이후 외교 노선을 친 세인트로 전환한다. [13] 베어즈쪽에서 노블을 보내 막타를 친 상태로 협상을 시작했고, 협공끝에 일어난 일이니 점유는 베어즈가 한다 라고 선포했었다. 또한 그 이후에 세인트,베어즈는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14] 세인트의 선공에 서로 중재하려고 했으나, 2~3일후 세인트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고 베어즈가 뒤늦게 대처를 했다. [15] 일진일퇴라기보다는 대부분 영농테크가 많아서 꿀곰들이 많았다. 상위랭커들은 승리하고 나머지는 탈퇴, 흡수의 길을 걸었다. [16] MTW도 이 중재에 관여했다는 말이 있다. 다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중재 당시 MTW의 비중은 상당히 낮았던 것 같다. [17]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서 중재를 요구한 것도 그렇고, 전쟁이 거의 일방적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휴전이 될 턱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그걸 외교에 뼈가 굵은 달 관료진들이 모를리 결코 없다. [18]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ame1&no=681162&page=1 선전포고문이다. [19] '푸른노을'이라는 이름 자체는 계정의 이름인데, 본 계정의 주인 대신에 당시에 누군가가 이 계정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부족전쟁에서는 본 주인 대신에 '푸른노을'이라 불리게 된다. [20] 케이탑 자체는 남서련 지부에 따로 소속되지 않았고, 이런 점 때문에 후일 남서련의 핵심 멤버들과 합세하여 단군 부족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자신의 지지세력들의 단물만 빨아먹고 버린 것이다. [21] 외섭에서 이후 시나(sina)의 유지를 받들어, "for sina!"를 외치며 활약한 용자들이 있다. [22] 오죽하면 신 시나브로의 모 랭커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북삼련 사이에서 그가 부족전쟁으로 인한 과로로 입원했다는 소식이 퍼질 정도. 상대도 한 수 물러주는 센스가 있었다. [23] 북부 최대의 격전지로 여러 대륙들이 특정 부족의 세력권이 되는 동안 이 대륙 지역은 2009년 말에 이르기까지 거대부족과 중소부족을 막론하고 십수개의 부족이 전투에 참여한 전국시대였다. 그런 대륙인만큼 15대륙군의 이탈은 타격이 컸으며 이를 판데모니엄연방 몰락의 시초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홍우로 넘어간 이들은 활약하여서 판데 코어대륙이었던 16대륙과 25대륙,26대륙,35대륙 등으로 진출한다. [24] 엔젤하이로는 북서에 주 세력이 근거하고 있었지만 대고구려 등에 의해 축출되었다. 타임즈는 그들을 흡수하려고 했지만 대고구려, 고구려제국의 방해로 성과를 못 이룬다. 이후 타임즈의 ‘sarada’는 이를 미안하게 여겨서 엔젤하이로는 각별히 돌보았다. ‘sarada’는 이런 식으로 남서 부족들을 돌보려고 했다. [25] 미안, by DECRO [26] 어라, 남서련 결성 당시에 엔하 부족장은 DECRO라는 닉네임이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27] 사실 달과 불사조 멤버들은 어떻게든 케이탑 때려잡고 현게 탈 요량이었다고 다수가 회고했다. 실제로 케이탑이 코어에서 철퇴당한 이후에 많은 유저들이 현게를 탔다. [28] 넷 상으로 임명되어 관리했다. 여성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폴란드 인이라고 한다. [29] 어드민 레벨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최하위의 어드민은 밴도 못한다고. [30] ‘푸른노을’이나 ‘블러드윈드’ 모두 규정 위반으로 밴 먹었다. 그 외에 온갖 랭커들은 밴 경험을 한 번은 지니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게 다 정당한 사유는 아니다. [31] 어드민 ‘카브놋’은 대규모 밴을 하려면 해당 계정의 이름들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수 만 명을 일일이 적기에는 무리였으니, 각 부족의 오피서들이 전체 메일을 보낼 수 있는 기능을 악용하였다. 전체 메일 기능에는 부족원 명단이 모두 뜨게 되는데, 이것을 긁어다가 밴 목록에 올린 것. 어드민들은 어드민툴로 모든 계정을 해킹할 수 있었으며 ‘카브놋’은 해킹 계정과 ‘sarada’ 등의 소수에게만 밴을 하지 않았다. [32] ‘카브놋’은 오게임 유저였다. 디시 오겜갤에서도 나름 활동하던 유저였다고 한다. [33] 연방장, 부연방장을 비롯해 판데모니엄의 중요 수뇌는 HKK 출신들이 꾀찾으며 HKK출신 간부진은 판데모니엄 부족명을 HKK로 바꾸는 논의까지 실제로 했다. [34] 사실 판데모니엄과 그 연방 부족 수뇌부는 청령을 한수 아래의 하부 부족으로 보았다. 물론 청령 간부진은 1:1 로 대등한 동맹-또는 혈맹 관계로 보았고. 그래도 중학생 간부진들의 그 짓거리는 좀 심한 감이 있다. [35] 특히 불사조로 이동한 판데모니엄 남부 지역 유저들과, 붉은곰으로 이동한 북부 지역 유저들의 상당수는 각각 지역에서 간부나 최전방 유저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신의명가로 이동한 부족원은 소수였지만 신의명가에서 점수로 초상위 랭커를 했다. 하지만 신의명가로 간 사람들의 경우엔 판데에 있을때와는 달리 활동은 적었다고. [36] 일부에서는 최종 전쟁이라는 표현 대신에 WW3나 WW4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사용하기가 부적절하다. WW2 이후 전쟁들은 모두 3강 세력권과 케이탑 세력권의 대립이었다. 때문에 이 위키 항목에서만이라도 WW3나, WW4의 사용은 자제를 요청한다. [37] 아미쿠스들은 부족 구분을 알파벳으로 했다. 이것은 이후 연방 부족의 표준이 됐다. [38] 붉은곰 부족의 전신 중 하나인 북극곰은 그 유명한 자유인 jackass를 비롯해 판데모니엄을 공동으로 상대하면서 불사조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무 외교 상태이지만 우호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39] 남동 방위를 장악하고 66대륙 일대는 단군과 아예 붙을정도로 활발했던 쥬신 부족이었지만 동서남북 4방위에서 몰아치는 불사조의 공격에 버티긴 힘들었나보다. 쥬신의 아카데미 부족이었던 신라가 먼저 해체를 하고 쥬신의 대부분 유저들은 단군으로 넘어온다. 일부는 쥬신이라는 부족명을 지켰으며 일부는 불사조로 투항한다. [40] 불사조로아, 신의명가는 공유 포럼을 갖추고 싸운다. 다만 로아의 경우 어린 유저들이 주축이라 적대 부족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했다는... [41] 구 단군 출신들은 청령을 배신자라고 욕했고, 구 불사조임모탈(특히 신의명가)을 배신자라고 욕한다. 청령의 경우엔 전통적인 외교 노선대로 중립 부족으로 남았어야지, 불사조에 흡수당한건 미스였다. 족장을 제외한 대부분 전방 유저가 파먹히거나 현게 탔다. [42] ONE 부족은 이후 남동 방위의 류카시엔이 홀로 지킨다. ONE 부족의 프로필에는 푸른노을의 이름이 여전히 남아있다. 나중에 류카시엔 유저는 불사조 연방에 가입했다가, 탈퇴. 현재 남동 방위의 무소속 고랭커로 남아있다. [43] 사실 천지인 초기 수 개월간은 천지인이 스코어에 앞섰으나, 이후 불사조에게 너무 큰 폭으로 뒤쳐졌다. [44] 이후 천지인이 패전 선언을 하게 되면서 단군 출신의 족장 푸른노을은하수ROA(아미쿠스) 출신 유저들에 대한 분노를 표시했다. [45] k6에서 k45에 이르는 북부 천지인은 구 달-신의명가 출신 유저들과 붉은곰-단군 출신 유저들이 어우러져 불사조가 심각한 위기 지역으로 판단할 정도로 전쟁을 펼쳐나갔다. 이에 밀린 불사조 유저는 운영툴로도 의심받는 심각한 버그를 이용하기에 이른다. [46] http://forum.bujokjeonjaeng.oRG/showthread.php?t=13536 관련글 링크 [47] 푸른노을이 갈아탄 계정의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르고 갈아탄 것이 아니라 운영팀에게 프레미엄 점수를 주고 단순히 닉네임 변경 한 아이디이다. [48] 많은사람들의 예상과 우려와 기대와 달리 부족전쟁이란 게임이, 특히 수만명의 노예와 수십만의 사람들이 오간 1세계는 이렇게 끝날 곳이 아니긴 했다. [49] MooN(달)은 진짜 말그대로 부족명 유지만 한다. [50] 1위는 부족명만 지켜지고 있다가 일부 구천지인 랭커들이 몸담게 된 SAINT다. 2008년부터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나 명예의전당,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전범 수용소 같은 개념이라 정세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사실상 쌈닭 이들이 평균 부족 1위라고 봐도 된다. [51] 윈터나이츠 본인의 개인 텍스트에 따르면 윈터나이츠,진짜지구최강,활명수36,Helmin200,하늘,rmflssns,한승연,빨간따그닥이 이들이다. 이 중에서 빨간따그닥을 빼고 옥빌간쥐,이화에월백 등을 넣는 경우도 있다. [52] 중반기에는 중소부족의 甲이 되겠다는 포부도 내세운다. [53] 계속 늘어가서, 이들은 현재 1세계에서 부족원 숫자는 가장 많은 부족이다. [54]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여기 부족원들은 사실 구 천지인 계승 의식도 그렇게 갖고 있지 않았고, 신규 부족원이나 다른 서버를 중심으로 플레이 하는 유저들이 대다수였다. [55] 그냥 여성유저가 아니라, 나름대로 미모를 갖춘 여고생 유저라고 한다. 인증도 했다. 과거 부족전쟁의 수많은 남정네들을 울게한 넷카마들과는 달리 진짜 여고생이다 [56] 확인불가다.

주석 및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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